항만·물류전문가인 박창호(43) 박사. 현재 인천발전연구원 한중교류센터 실장인 그에게 부산은 애증의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한국해양대 출신인 그는 지난 2000년 여름, 9년간 몸담았던 부산발전연구원(BDI·부발연)을 떠나 낯선 연구소에 새 둥지를 틀었다. 부발연 개원멤버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그는 왜 부산을 떠났을까.
“용역을 수행해야 밥이 나오는 현실 속에서 무슨 연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부산 특유의 폐쇄적 연구풍토도 답답했어요. 더구나 주어진 연구용역조차 행정기관의 입맛을 맞춰야 해 학자적 고민도 적지 않았습니다.” 박 박사가 뒤늦게 털어놓은 ‘부산 탈출기’는 지역의 연구풍토를 엿보게 한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의 박성조(65·경제경영학) 정교수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출향인사. 부산 기장군이 고향인 그는 베를린대 외국인 총장, 도쿄대 교환교수 등 세계 유수대학의 초빙제안을 받을 정도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고향인 부산에서는 그의 존재조차 잘 모르고 있다.
박 교수는 “세계의 유수 도시들이 제각기 뚝심과 순발력을 발휘해 미래를 준비하는데 반해 부산은 정체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초빙하면 오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기회가 주어지면 고향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은 인재에 대해 지극히 무관심한 도시다. 지식기반사회의 경쟁력인 인재를 키우지도, 지키지도, 불러들이지도 못하는 인재정책의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도시를 주창하는 부산시에는 국제감각을 지닌 외국 브레인이 한명도 없고, 대학은 폐쇄된 지식의 성안에 안주하며, 지역사회는 소외만 이야기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입시기관 등의 통계에 따르면 부산의 고교 졸업생, 대학생, 대학원생 등 최소 1만명의 인재가 매년 부산을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산이 전국 제1의 인재유출 도시이자 수도권의 ‘인재공급창’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해 대학에 진학한 고교 졸업자 4만5천4백66명 가운데 9.3%인 4천2백여명이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했다. 성적 우수자들의 수도권행은 더 심해, 수능성적 360점 이상 고득점자 4천5백1명 중 56.5%인 2천5백4명(2000학년도)이 부산을 떠났다.
고급인력도 끝없이 유출되고 있다. 각 대학 취업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에서 배출된 전문대 이상 졸업자 총 5만5백27명(석·박사 3천9백82명) 가운데 진학 및 취업을 위해 20%가 수도권 등지로 간 것으로 분석됐다.
이 결과는 참담한 지역인재난으로 돌아오고 있다. 인적자원의 핵심인 전문가, 기술자 계층이 서울의 경우 전체 취업자의 17.9%(2001년 통계청 자료)를 차지하나 부산은 9.0%에 머물고 있다.
지역의 지식기반이 수도권에 종속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인재유출은 단순히 사람이 떠난다는 차원을 넘어 ‘지역경제 침체→일자리 부족→도시발전 지체→고급두뇌 유출’이란 악순환을 낳고 있다.
부산시와 교육청, 지역대학, 상공계는 부산을 살린다는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 ‘지역인적자원개발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연말 정부가 확정한 국가인적자원개발 기본계획은 ‘지역의 전략’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대 임정덕(경제학·전 부산발전연구원 원장) 교수는 “부산의 발전전략은 거창한 개발사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인재를 키워 적극 활용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지역인재·인력을 망라한 데이터베이스 하나 없고, 변변한 산학연 네트워크조차 찾기 어려운 부산의 척박한 현실을 누가 돌파해 비전을 만들 것인가. 2002년 봄 지역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 박창희기자
/ 임은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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