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신호
모두가 강을 사랑하던 때가 있었다. 방죽길 너머 징검다리 사이로 여울져 흐르던 맑은 물 속에서 멱감고 고기잡던 시절 말이다. 생각만해도 뭉클한 천변(川邊)풍경이다.
도시화·산업화는 이런 천변풍경을 깡그리 빼앗아가면서 사람들을 강과 결별시켰다. 도시의 강은 오폐수와 노폐물이 흐르는 하수구였다. 천변은 죄다 콘크리트로 뒤덮였고, 강심에는 지하철의 다리발이 꽝꽝 박혔다. 빼꼼한 빈자리는 주차장으로 복개됐다. 악취 풍기는 강변에서 아이들은 코를 틀어막고 어른들은 고개를 돌렸다. 금정~동래~연제구를 적시던 온천천(길이 15.7km)도 그렇게 죽었다.
그 온천천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은 경이다. 천변에 칠갑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물을 맑히는 작업이 7년째 이어지면서 강이 새록새록 숨을 쉬고 있다. 온천천의 허리춤인 동래구 수안동 사직천 합류지점~세병교~안락교 구간이 바로 놀라움의 현장. 한동안 강과 결별했던 사람들이 다시 이곳을 찾고 있다. 아직 갈길은 멀다지만 온천천의 변화는 도시의 희망으로 와닿는다.
#강에 비치는 얼굴
지난 9일 오후 4시 온천천 시민공원. 우수(雨水)가 가까워오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무작정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자전거 타는 아이, 롤러스케이트 타는 중고생, 산책 나온 노인, 장바구니를 들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주부, 농구하는 청소년….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고 편안해 보인다. 등뒤에 우뚝 솟은 금정산이 물끄러미 천변풍경을 보고 웃는다.
거의 매일 산책하러 나온다는 신경환(72·연제구 거제동)옹은 “물은 많이 맑아졌는데 아직 악취가 조금 있어. 그래도 강물에 얼굴이 비치고 있잖아”하고 말했다.
강물은 겨우 강바닥을 적실 정도로 흐른다. 수질은 깨끗하다 할 수 없지만 더럽지는 않다. 세병교~연안교 사이에 놓인 돌다리 틈에는 여울도 나타난다. 찰방찰방 흐르는 물소리. 방죽길을 오가는 자동차들은 강물에 비치는 ‘제 모습’이 신기한 듯 차창을 열고 강쪽을 기웃거린다.
연안교 주변의 물길은 하루 두 번씩 거꾸로 흐른다. 바닷물이 차서 내쳐 올라오기 때문. “역류때 숭어 붕어 따위가 튀어 오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고래가 올라왔다고 해서 이곳을 ‘고래뜰’이라 부르기도 했지요. 하지만 괜찮은 온천천 물이 역류때 올라온 수영강의 더러운 물에 빠지는 꼴이어서 안타깝습니다.”
시민공원 관리사무소 정승모(46·연제구청 직원) 팀장의 말이다. 그는 오폐수 차집관로가 설치된 이후 온천천은 유지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제구청이 6만여명의 공공근로자를 동원해 지난 99년 9월 완공한 이 시민공원에는 요즘도 하루 평균 3천여명의 시민이 찾고 있다. 이곳에는 2.4㎞의 자전거 도로와 물놀이 시설(3개소), 롤러스케이트장, 농구장 등이 꾸며져 있다. 둔치와 강 비탈에는 잔디와 꽃창포 원추리 등 28종 5만9천여포기의 초화, 사철나무, 회양목 등 25종 1천2백여 그루의 나무들이 가꿔져 있다.
#자연의 표정
자연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길 원한다면 세병교 바로 위 수안초등학교 앞쪽에 조성된 ‘생태학습장’으로 가보시길. 시골개천이 따로 없다.
동래구청은 지난 95년 ‘온천천 SOS’ 사업에 착수, 자체 용역을 거쳐 99년 상반기 송월타올 뒤편의 하천바닥 및 호안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걷어내고 자연형 하천 240m를 복원했다. 이듬해에는 세병교~이섭교 구간에 자연관찰로, 출입계단,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제방과 둔치에 야생초화 단지를 조성했다.
이 사업의 키포인트는 자연형. 아직 사업이 진행중이라 성공 여부를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구간별 수질이 개선되고 붕어, 미꾸라지, 송사리 등의 어류와 갖가지 곤충이 찾아들었다는 보고가 있다. 지난 여름 많은 학생들이 여기서 탐사학습을 벌였다.
동래구청 전형준 환경위생과장은 “이 사업이 없었다면 아마 남은 구간마저 복개 위기에 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오는 4월 ‘온천천 살리기 마스터플랜’이 확정되어 차질없이 복원사업이 진행되면 온천천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활의 노래
온천천의 부활 효과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어른들은 잃어버린 천변풍경을 되찾았고 아이들은 흩어지는 꿈을 움켜쥘 수 있었다. 강변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진 것은 물론이다. 온천천 시민공원이 들어선 후 주변 아파트 값이 껑충 뛰었다는 것은 환경개선이 실물경제에 끼친 직접 효과였다.
‘온천천 살리기 네트워크’ 김인태(연신초등교 교장) 공동의장은 온천천 생명운동을 부산의 희망찾기에 비유하며 “자연을 통한 정서순화, 자연생명의 소중함, 자연과의 친화력 배양을 가르치는데 이만한 현장 교사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온천천 천변의 바람은 아직 차다. 둔치에 조성된 초화밭의 바삭바삭한 잎들은 겨울 강변을 을씨년스럽게 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초화밭이 숨을 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겨우내 초화들을 꽉 붙들고 있던 흙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면서 넓어진 흙 구멍 사이로 햇살이 파고들고 있다. 이들 초화의 꿈은 봄이 되면 자연스럽게 꽃을 피우는 것이다.
온천천의 꿈도 이와 무엇이 다를까. 늘어선 갈대와 초화의 갈채를 받으며 힘찬 물살로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 이는 어른들에게는 천변풍경을 되돌려주고, 아이들에겐 희망을 보는 눈을 키워주는 꿈이다.
/ 박창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