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정 옛터
정서(鄭敍)라는 고려의 한 문신이 있었다. 호는 과정(瓜亭), 본관은 부산 동래였다. 고려 의종의 총애를 받다가 권신들의 모함으로 고향땅으로 귀양 와 뜻하지 않은 ‘귀향살이’를 했던 문사. 다시 부른다던 임금의 언약은 20년 세월 저편에서 가물거리고, 그리움과 안타까움만 쌓여가던 새벽녘 접동새를 벗하며 그는 시를 읊었다.
‘내 님을 그리자와 우니다니/산접동새 난 이슷하요이다/아니시며 거츠르신달 아으/잔월효성이 아라시리이다/…/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고교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정과정곡(鄭瓜亭曲)’이다. 이 가사는 한글로 전해지는 고려 속요 중 작가가 분명한 유일한 작품으로,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詞)의 전형이란 평가도 따른다.
이 가사를 부산 시맥(詩脈)의 뿌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정과정곡이 지어진 곳이 수영구 망미2동 산4번지 수영강변 용두곶(경암) 일대로 믿어지기 때문. 지난 85년 향토사 연구모임인 토향회는 여기에 기념비 하나를 세웠다.
시비 뒷면의 글이 재미있다. ‘…적소의 모래톱에 오이밭 일군 뜻은 덩굴손으로 그리움을 감고 황색 꽃잎으로 수심을 가리고자 함이신가 북방요배 스무해 언약받은 소명 기다려 장구한 세월 묵죽화와 시가로 보낸 공의 자취는 8백 성상 춘풍추우에 쓸려가고….“(국문학자 김무조씨 글)
#항구의 신명
정서가 씨앗을 뿌린 부산의 시맥은 조선 중기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가 바통을 잇는다. 몰락한 양반인 노계는 선조 38년(1605년) 통주사(統舟師)로 임명되어 부산진성으로 내려와 병선위에서 걸쭉한 가사 한편을 뽑는다. ‘선상탄(船上歎)’이다.(사진-금강공원에 잇는 이주홍의 '해같이 달같이만' 동시비)
‘…일장검 비스듬이 차고 병선에 올라타 눈 부릎뜨고 대마도를 굽어보니…’ 하는 구절이 말하듯 이 시가는 무인된 자의 용전투지가 번뜩이는 전쟁가사다.
부산의 시맥은 조선후기로 접어들어 한시·시가·단가 등으로 다채롭게 꽃을 피우고 향파 이주홍, 청마 유치환 등으로 이어진다.
청마가 부산에 남긴 자취는 그리움 넘실대는 파도의 서정 그것이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날 어쩌란 말이냐’(그리움2) 하는 시구는 부산을 서정의 푸르름으로 펄럭이게 한다.
동심의 향기가 맡고 싶다면 동래 금강공원으로 가볼 것. 공원입구에서 왼쪽으로 난 산책길을 따라 가면 오석(烏石) 기단의 장방형 자연석에 이주홍의 ‘해같이 달같이만’ 동시비가 서 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누가 지어냈는지/모르겠어요/어…머…니… 하고/불러 보면/금시로 따스해 오는 내 마음…’. 바로 옆에서 최계락은 ‘파아란 잎이 하늘거리는’ ‘꽃씨’(동시)를 따서 길손들에게 뿌려준다.
70년대 이후 부산시단은 외적 풍성함과 내적 진지함을 갖추며 부산을 소재로 한 많은 시들을 생산했다. 시에 그려진 부산은 역동적이고도 풋풋하다.
‘부산은 아시아 대륙을 끌어올리는 기중기/바닷바람에 검게 탄 얼굴과 구릿빛 탄탄한 근육/억센 사나이들로 넘치는 언제나 붐비는 곳…’(김석규 ‘부산’)으로 묘사되는가 하면, ‘정말 사람이 사는 것을 보려거든/자갈치시장에 가 보아라/햇살의 비늘 번쩍이는/온세상 비린내 다 모아 풍기는’(정영태 ‘자갈치시장1’) 하며 삶의 현장을 직설적으로 묘파한다.
항구의 신명, 마도로스의 포부가 어디 가겠는가. 부산의 기질은 이처럼 시로 영글어 항구의 신명을 끝없이 풀무질한다.
시인 최영철씨는 “부산에는 토박이들이 많지 않아 시적 분위기에 있어 전라도처럼 고향정서가 스며든 결고운 가락을 찾기 힘든 대신, 선이 굵고 활달한 면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노래에 스며든 역사성
부산은 노래가 성한 도시다. 일본에서 유입된 가라오케나 노래방의 ‘원조’가 부산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부산을 노래한 대중가요도 흔하다.(사진-동래 금강공원에 세워진 최계락의 '꽃씨' 동시비)
중구 동광동의 ‘사십계단’ 기념비에는 아직도 ‘경상도 아가씨’가 고향잃은 피란민을 달래고 있다.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울지 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잣집/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그래도 대답없이 슬피 우는 이북고향 언제 가려나’(경상도 아가씨)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용두산 엘레지’ ‘해운대 엘레지’등도 그 시절의 가요들. 이들 노래의 정한은 애조를 띠지만 그 바탕에는 부산의 푸근한 인정과 동포애가 버무려져 있다.
70년대 이후 나온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룹 썰물의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문성재의 ‘부산갈매기’는 헤어짐과 그리움, 바다의 서정을 잘 드러낸 가요다.
문학평론가 송희복씨는 “부산의 옛 시가와 노래는 양적 질적으로 매우 풍성하다”면서 “아마도 부산이 중요한 역사현장의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노래라면 ‘부산찬가’(83년 6월 제작)가 빠질 수 없다. 한때 청소차의 테마송이기도 했던 이 노래가 그저그런 건전가요로 전락되지 않고 계속 사랑을 받고 있는 데는 가수 윤씨네의 공이 크다.
‘수평선 바라보며 푸른 꿈을 키우고/파도소리 들으며 가슴 설레이는/여기는 부산 희망의 고향/꿈많은 사람들이 정답게 사는 곳/갈매기떼 나는 곳/동백꽃도 피는 곳/아~ 너와 나의 부산…’(윤평원 작사 이범희 작곡)
노래 중간쯤의 ‘~정답게 사는 곳’은 이 노래의 백미다. 윤씨네의 구성진 목소리와 시원한 바이브레이션이 통렬하게 만나면서 막힌 가슴을 활짝 열어준다. 부산지하철 1호선을 타고 시청역에 닿을 무렵이면 이 노래가 짱짱 흐른다. 노래는 1절 ‘~정답게 사는 곳’에서 뚝 끊기지만 여운이 있다.
수평선, 푸른 꿈, 파도소리, 갈매기떼, 동백꽃…. 이 노래를 들으면 바로 여기, 발딛고 사는 땅이 ‘너와 나의 부산’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취재여록------------------------------------------------------------
수영구 망미2동 ‘정과정곡’ 유적지는 부산의 자랑거리다. 이 유서깊은 문학현장이 개발광풍에 휘말려 훼손되고 있다. 옛날 모래톱이던 수영강 매립지에는 아파트 단지가 조성중이고 야산 뒤로는 제1도시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오른편에는 공장(고려제강)이, 왼편에는 너절한 고물상들이 진을 친다. 정서가 소일했다는 용두곶 바위는 도로확장 공사로 곧 무너져 내릴듯하다.
정서가 이를 본다면 아마 ‘아으-’하고 기함할 것이다. 학교에서 ‘정과정곡’을 배우는 학생들이 이 뒤숭숭한 현장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지역 토박이 한정남(75·수영구 망미2동) 할머니는 “정과정곡비가 있는 곳은 옛날부터 동네 당산이라 캤다. 우쨌든지 지키도록 해주소. 도와주소이”하며 기자의 옷소매를 놓지 못했다.
부산의 시가와 노래를 찾아 부르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취를 잃어가는 문학현장을 되살려 보존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 박창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