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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부산이 좋다 <18> 몰운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2-01-09 2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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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의 땅끝

부산은 모름지기 대(臺)의 도시다. 해운대 태종대 몰운대 신선대 이기대 오륜대 의상대 겸효대 강선대…. 꽤 많다. 여기서 대는 무슨 누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풍광을 보는 장소를 일컫는 풍류다. 옛 풍류객들은 해운대, 태종대에다 몰운대를 끼워 ‘부산 3대(臺)’라 불렀다.

몰운대가 3대에 든 것은 당연해 보인다. 겉으로는 면적 50만6천㎡, 해발 78m의 나지막한 해안 봉우리일 뿐이지만, 들여다보면 선사(先史)가 머물고 조선의 항전과 풍류가 흐르고 끝없는 만남이 꿈틀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몰운대는 앉음새부터 걸작이다. 경륜있는 산악인들은 이곳을 한반도 동남부의 토말(土末·땅끝), 곧 백두대간의 종착점으로 본다. 백두산과 태백산의 정기와 기상이 낙동정맥을 따라 금정산에 닿고, 금정산에서 다 주체 못한 기상이 바다쪽으로 흘러 몰운대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땅끝’에서 석기시대의 삶이 움텄다는 것은 가슴떨리는 여운이다. 지금부터 5천~6천년전 한반도 동남단에 무슨 일이 있었는 지 ‘타임캡슐’을 들춰보자.

1966년 부산대 박물관팀은 다대포 유적조사에서 수천년 시간의 때가 끼인 조개무지와 무문토기, 빗살무늬토기, 붉은 산화철을 칠한 토기조각들을 발굴했다. 석기시대 사람들이 까먹고 버린 조개 껍데기와 고요히 잠자던 토기조각들은 신석기-청동기-철기로 이어지는 선사문화의 층위로 보고됐다. 이것이 다대포 패총이다. 지금의 몰운대 입구, 몰운 커피숍 일원이 그 자리다.

몰운대에 가면 필시 이 패총터를 밟게 된다. 한번 느껴보시길. 돌화살촉, 돌칼 따위를 들고 신석기 산맥을 불태우며 시베리아에서 남으로 남으로 이주해 푸른 한시절을 보냈을 원초적 삶의 숨결을. 하지만 현장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참고해야할 듯.

어쨌거나 몰운대는 세상의 땅끝이 아니라, 삶의 시작이자 희망이었다.

#항전과 시정의 무대

몰운대 오솔길을 걷다보면 뜨거운 이름 하나를 만난다. 정운(鄭運·1543~1592)이라는 조선의 사나이다. 임진왜란 때 부산포에서 이순신 함대의 우부장(右副將)으로 처절하게 싸워 이기고는 동백꽃 지듯 져버린 용장. 몰운대 남쪽 기슭 군사통제구역 내에는 그의 ‘순의비(殉義碑)’가 세워져 충과 절의 의미를 새삼 곱씹게 한다.

칼날 선연한 포연이 걷히고 100여년 뒤, 몰운대는 시정의 무대로 돌아온다. 묵객들은 몰운대의 승경에 취해 바람과 달을 붙잡고 논다. 동래부사 이춘원(李春元)의 ‘몰운대’ 칠언절구는 그 절정이다.

浩蕩風濤千萬里(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리만리로 이어지고) 白雲千半沒孤臺(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파묻혔네)….

몰운대는 오늘도 변함없는 시의 무대가 되고 있다. 부산시인 박정애씨는 몰운대가 공유의 자산이라고 사설풀듯 소리친다. ‘…날뛰던 바람도 자고 헌신짝 툭툭 털어 다시 꿰찬 아, 낯익은 달, 저거 우리꺼제’.

다대포의 아파트에 살면서 매일 아침 몰운대를 산책한다는 시인 강은교씨는 “열린 바다, 아기자기한 섬들, 반짝이는 갯벌 은 언제나 새로운 시적 감흥으로 다가온다”고 말한다. 얼마전 미국 버클리대 연수중 현지의 마리나 해변에서 그는 무심코 직선을 그었는데 그 선이 다대포에 닿더라며 웃었다.

#우연이 아닌 만남

몰운대는 다대포와 ‘모래다리’로 간신히 이어져 있다. 16세기 이전까지 섬이었으나 낙동강에서 쓸려 내려온 토사가 쌓이면서 육계도(陸繫島)가 됐다. 기이한 만남이다.

호젓한 모래다리를 밟고 몰운대로 걸어 들어가면 문득 조미미의 노래 ‘바다가 육지라면’과 노사연의 ‘만남’이 흥얼거려진다. 바다가 육지로 변했으니 애간장 태우는 사랑타령이 오히려 머쓱하다. 하지만 이곳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몰운대에는 여러가지 만남이 있다. 강과 바다의 만남이 있고, 동해와 남해의 접점이 있고, 밀물과 썰물의 조우가 있고, 갯벌과 육지의 접경이 있다. 게다가 백두대간과 태평양의 지구적인 상봉도 있다.

몰운대에는 또하나의 걸출한 대(臺)가 있다. 동쪽 산등성이의 화손대(花孫臺)다. 깎아지른듯한 해식애와 기암괴석이 싱겁다면 바다쪽을 살필 것. 두송반도를 비켜나 망망대해를 향해 오순도순 둘러앉은 무인도들-솔, 모자, 나무, 남형제, 북형제, 쥐, 오리, 팔봉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섬들이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 않다. 내친 김에 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석양까지 보시길. 화손낙조(花孫落照·저녁노을에 물든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정경·다대8경의 하나)의 장관이 바로 거기 있다.

몰운대 ‘만남의 언덕’에는 언제나 바람이 분다. 푸른 호흡의 파도가 몰아오는 바닷바람을 쐬고 있으면 온몸의 숨구멍이 열리는 것 같고 생이 다 시원해진다.

무엇이 행복인가. 무엇이 더 필요한가. 몰운대의 바람은 대자연의 만남을 되뇌이며 끝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몰운대 지킴이 한건·김정량씨

   
몰운대 구름다리에서 체육공원으로 가다보면 작은 물웅덩이가 있다. 그 옆의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알림;이곳은 야생동물 물먹는 곳이니 이물질을 넣지 마세요!’ 야생동물이 얼마나 있길래.(사진-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곳에 마치 학이 나는 모습으로 앉은 몰운대.)

“고라니 다람쥐 청설모 그리고 꿩같은 새가 많심더. 저쪽 쥐섬에서 헤엄쳐 건너온 고라니만도 10마리가 훨씬 넘어예.” 사하구청 녹지계 소속 임성인(55) 관리반장의 말이다. 그는 “비가 안오면 웅덩이에 물 갖다붓는 기 일입미더”하고 덧붙인다.

향토사학자 한건(韓健·60)씨는 매년 음력 9월 초하루 열리는 정운 장군 향사의 제주다. 그는 정운의 최후 항전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때는 1592년 임진년. 그해 7월초 한산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은 부산포로 와서 166척의 함대로 8월말 일본 수군 500여척에 선제공격을 가한다. 피 튀기는 아수라의 해전에서 오른쪽 선봉장인 정운은 죽기살기로 싸워 대승을 낚는다. 그 즈음,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정운은 제 한몸 잊어버리는 장한 사내다…. 적선에 뛰어올라 백병전을 감행하고 적의 군함을 통째로 나포해 끌고 왔다’고 적고 있다. 다대포로 패주하는 적선을 쫓던 정운은 적의 유탄을 맞는다. 그리고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한씨는 “난중일기와 징비록 등의 기록에 비춰보면 정운장군이 쓰러진 자리는 몰운대 근해, 모자섬과 쥐섬 사이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몰운대 남쪽 기슭의 ‘정운장군 순의비’는 1798년(정조 22년) 다대첨사로 부임한 정혁(鄭爀·정운의 8대손)이 세웠다. 비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왜적과 조우한 정운공(公)은 몰운대의 운(雲)자가 자신의 이름자인 운(運)과 음이 같음을 알고 이곳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분전하다 순절하였다.’(사진-몰운대의 정취를 노래한 동래부사 이춘원의 시비)

김정량(41)씨는 인터넷에 ‘다대포 가이드’라는 사이트(www.dadae.co.kr)를 운영하면서, 학생들과 수시로 사이버 역사토론을 한다. 한건씨와 함께 ‘다대포 향토사’를 정리하고 싶다는 김씨는 “몰운대는 다대포의 자부심이며 그 어떠한 투자로도 얻을 수 없는 관광자원”이라고 말했다. / 박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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