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연
부산 기장군 정관면의 중소기업인 세일기술 장진규(60) 대표는 요즘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지난해 9월 벡스코와 인연을 맺기 전까지 꿈도 꾸지 못한 활력이다.
가산탕진과 가족 원망을 밑천으로 그는 5년 연구끝에 ‘자동차 충격완충범퍼시스템’을 개발, 한국·미국·독일에서 기술특허까지 얻었으나 투자자를 만나지 못해 그의 꿈은 신기루로 사라질 위기에 있었다. 그러나 벡스코호에 동승하면서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지난해 9월 부산국제모터쇼 전시장에서 투자자를 만나 요즘 서울과 지방에 공장을 가동하며 ‘바쁜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아름다운 인연이었죠.” 장 대표는 그렇게 말하면서 “하하하” 하고 여한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벡스코와의 남다른 인연이라면 인기가수 유승준도 할 말이 있다. 지난 12월 세계 10억 인구, 20억개 눈동자가 지켜보는 월드컵 조추첨행사 본무대에서 날고 뛰며 한바탕 놀았으니 말이다. 유승준은 당시 감동을 잊지 못해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날 다시 벡스코에서 라이브를 열어 그만의 끼를 맘껏 분출했다.(별도 박스)
지난해 벡스코에선 모두가 아름다운 인연을 맺었다. 1천3백명의 취재진을 통해 ‘부산’은 세계 190개국 외국인들과 인사를 텄다. 판로를 못찾아 허덕이던 기업체들은 바이어를 만났고 문화갈증을 느끼던 시민들은 대형 콘서트를 만났다.
#태평양 닮은 걸출한 외모
옛 수영비행장 터에 벡스코가 둥지를 튼 것은 지난해 5월 23일이다. 정부의 전시컨벤션 산업 육성책에 따라 국비, 시비, 민간자본 등 1천6백억원이 투입된 컨벤션 둥지는 2년여만에 옥동자를 낳았고 ‘벡스코’란 이름이 지어졌다.
벡스코의 겉모습은 부산의 웅지와 비상을 품은 갈매기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13만4천6백7㎡(4만7백여평) 부지에 지상 7층(높이 52곒)의 거대한 몸집이다. 내부는 배 앞머리와 대형 여객선 측면을 본땄다.
날개모양의 글래스홀(Glass Hall)은 역동적 변화를 추구하는 부산의 꿈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사용된 유리만 2천3백98장(165곘). 모양은 모두 제각각이다. 100% 자연채광과 3차원 트러스트 구조로 푸른 바닷빛이 도는 독특한 로비공간은 ‘부산’을 느끼게 한다.
공인축구장 3개 크기의 전시장(8천평)은 국내 유일의 기둥이 없는 단층 무주(無柱)공간. 첨단 내부설비와 이동식 칸막이는 필요에 따라 전시·컨벤션을 가능케한다. 컨벤션홀은 5천8백명을 동시 수용하는 매머드 국제회의장이다. 22개 회의실과 2천8백석 규모의 3층 대회의장, 8개국 언어가 동시통역되는 국제화상회의시스템….
건축평론가 김기수(40·동아대 건축학부)씨는 “이런 대규모 시설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돼 단기간에 준공된 것은 부산 건축사에 남을 사건”이라고 평했다.
#우리가 낚는 것은 미래
개장 첫해 벡스코는 36회의 전시회와 71회의 국내외 전시회, 20회의 이벤트를 소화해냈다. 국제관광박람회, 신발피혁·섬유패션전시회, 국제모터쇼, 마린위크 등 4대 행사에만 970여개 업체, 3만1천명의 바이어, 1백5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그 과장에서 3억2천만달러어치의 수출 구매상담을 낚았다.
올해도 4월 국제공작기계전, 7월 핸드볼 세계대회, 10월 세계합창올림픽, 11월 세계1위 SW업체의 ‘사파이어 부산 2002’같은 굵직한 행사가 줄줄이 예약돼 있다.
하지만 만족은 없다. 벡스코의 마케팅 첨병들은 ‘4~10년후의 오늘’과도 싸움을 벌이고 있다. 2006년도 세계 대(大)땜학회, 2007년도 6천여명이 모여들 전미여행업자총회(ASPAT), 2008년 세계양식대회도 사인만 남겨둔 상태다. 세계를 상대로 한 벡스코의 보이지 않는 유치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무주공간의 밥그릇
겉으로보면 벡스코는 허허벌판의 텅빈 무주공간이다. 그러나 전시·컨벤션이란 개념을 이해하면 텅 빈 그곳이 무한한 생산공간이자 부가가치 창출지점이란 것을 안다. 물류와 인류(人流)가 흐르는 창조가 그곳에 숨쉬고 있다.
벡스코는 부산의 산업구조와 체계를 바꾸고 있다. 단순한 산업만이 아니라 관광, 이벤트 등 ‘굴뚝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만들어내고 있다.
벡스코 정해수 사장은 벡스코를 ‘장중한 그릇’으로 표현한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 국을 담으면 국그릇, 찬을 담으면 찬그릇이 된다. 국제회의를 하면 회의장, 전시행사를 벌이면 전시장, 이벤트를 하면 거대한 오락실이 된다는 것이다.
정해수 사장은 뼈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벡스코의 특징인 포용성과 융통성, 가능성은 부산사람들의 기질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큰 뜻을 품으면 큰 그릇이요, 작은 용량을 담으면 작은 그릇이 된다. 임오년 새해에 우리는 벡스코란 그릇과 부산이란 양동이에 어떤 것을 담을 것인 지 대답해야 한다.”
/ 제해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