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사람들
부산지하철 1호선 온천장역 구내는 휴일마다 ‘단풍’이 든다. 울긋불긋한 등산복에 형형의 등산모, 색색의 스타킹을 한 길손들이 끼리끼리 진을 치기 때문. 지난 23일 오전에도 어김없이 단풍이 들었다. 역 구내 동쪽 매점앞에는 한무리의 ‘노장파’들이 성성한 나이도 잊은 채 어린애들처럼 상기되어 떠들고 있었다.
객1=만다꼬 그리 늦노, 이 늦둥아. 여기서 시간 다 깨묵고 우째 오를라카노.
객2=숨막혀 죽겠꾸마는 쪼매 늦었다고 지랄이가.
객3=밥은 싸 주더나.
객2=밥 물라꼬 산에 가나. 소주 한병 넣어왔다. 니밥 뺏떨어무까 시파 그라나.
객4=밥 필요없다. 오리 한 마리 푹 고아갖꼬 산성막걸리 묵으마 안되나.
등산모에 ‘KH’라는 부호를 붙인 10여명의 일행은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 육교 건너편 산성버스 정류장으로 몰려간다. 대기해 있는 203번 산성버스는 지하철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길손들을 차례차례 받아 태운다. 동문 또는 산성고개에 내리면 길손들은 세속의 길을 단칼에 끊고 럭비공처럼 튈 것이다.
#산성의 호국의지
어디로 튈까. 남문과 제1망루 쪽으로 길을 잡는다. 바람찬 산길에는 인적이 드문드문하다. 길섶의 나무들은 다 털어먹고 빈손이 되어 있다.
주능선의 산길은 성곽을 따라 흐른다. 산길에 무심코 깔린 성벽의 일부 막돌들은 삐어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건드리지 않는 성벽 대부분은 여전히 철벽이다. 철벽을 형성한 돌들은 서로 물고 물려 세상끝까지 깍지끼고 갈 태세다.
금정산성! 사적 215호인 이 산성은 금정산의 ‘항전의지’다. 이 산성의 축성사는 그대로 부산의 역사다. 지금의 성은 1703년(숙종 29년) ‘왜구방수계책’에 따라 쌓았다. 축성 100여년 후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은 ‘금정산성 부설비’를 세워 축성경위를 낱낱이 후세에 알려주고 있다. ‘…동래부는 해방의 중요한 고장이며 적이 처음 발딛는 곳으로, 수륙의 요충지인 금정산은 반드시 수비해야 할 땅이다…’
그렇게 고당봉에서부터 북-동-남-서에 성문을 내고 ‘ㄷ’자 형태의 성곽을 치니 길이 17㎞, 성내 면적 2백50만평이다. 현존 국내 산성 중 최대 규모다.
축성에 어찌 간난신고가 스미지 않았으랴. 300여년전 ‘백리 밖에서’ 들보를 옮겨오고, 낭떠러지 바위벼랑에 매달려 메고 끌고 돋우며 막돌을 다듬어 차곡차곡 쌓았을 민초들의 수고가 눈에 선하다. 임란·호란 다 겪고 뒤늦게 축성을 고집해야 했던 호국의 서원(誓願)이 사무친다. 그렇게 철저한 ‘사후약방문’을 해놓고는 한번도 실전에는 이용하지 못했다는 산성이다.
#망루에서 굽어보는 부산
상계봉 북쪽 300m 지점의 생기봉(生氣峰·650곒), 산성 제1망루를 관측점으로 잡고 ‘천하’를 굽어본다. 오, 부산메트로폴리탄! 낙동정맥의 산군(山群)이 바다쪽으로 말떼를 몰아 내려오다 우뚝 멈춰선듯한 장산 아래 해운대와 동백섬, 광안대교 현수교가 가물거린다. 육중한 형세의 황령산 서편에는 부산북항-조도-영도-천마산-백양산이 파노라마로 전개되고, 낙동강 하구와 김해벌이 가슴을 틔운다.
왜구의 침략루트였던 하구 저편 대한해협은 목측이 끊어져 보이지 않는다. 시선을 접어 코밑을 보니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이 하얀 국화빵처럼 앉아 있다.
발길을 북문쪽으로 돌려 제3망루로 간다. 동문 북쪽 약 1㎞ 지점. 해발 550m가 무지 높아 보인다. 발아래는 아찔한 급사면. 화강암의 기암괴석과 천구만별(千龜萬鼈·천가지 거북, 만가지 자라 형상의 바윗덩이)이 누르고 눌리고 엉기고 엉켜 산상 바위협주곡을 펼쳐낸다. 천험(天險)의 낭떠러지 위에 아찔한 망루를 세운 선인들의 기상과 성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백두대간의 힘과 기상
인공위성의 뷰파인더가 잡은 한반도 동남부의 골세는 장엄한 국토의 서사시다. 융기와 침강의 무수한 주름이 바다로 흘러드는 장면속에 낙동강의 까만 물줄기와 금정산의 검푸른 봉우리들이 출렁거린다. 백두대간의 종산(宗山) 태백산에서 뻗어내린 낙동정맥이 바다에 닿기전 불끈 솟구친 자리에 금정산이 있다. 풍수사가들은 금정산을 백두대간의 꽃이 피어날 발복의 받침대(地母)로 읽는다. 기(氣)나 세(勢), 형(形)으로 보아 나무랄데없는 부산의 진산(鎭山)이라는 것이다.
위성의 뷰파인더는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과 휘하의 장군봉, 원효봉, 대륙봉, 상계봉의 가파른 골세를 선명하게 일으켜 세우고 있다. 솟구친 봉우리마다 잿빛 말갈기가 휘날리는 듯하다. 백두대간의 힘과 기상이 닿아 있는 기세다.
북치고 노래하면 억눌린 역사와 산하, 움츠린 부산이 먼동으로 붉게 일어설 것 같다.
금정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가슴마다에 꿈을 품는다. 건강, 휴식, 여유, 추억, 사랑, 재기…. 금정산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목록들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그래서 이 산은 부산의 흔들림없는 믿음이다. 산 아래서 저 잘생긴 산릉의 이마를 보는 시인은 마냥 행복해 한다.
‘…아침마다/금정산 잘생긴 이마를 본다는 것/그것 하나만으로/가진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금정산 그 어디쯤 단풍들 듯/가을날 아침을 천천히 걸어간다.’(엄국현 ‘금정산’)
금정산은 높지도 낮지도 않지만 거산(巨山)이고 명산(名山)이다. 전문산악인들은 그렇게 보고 있다. 웅숭깊은 산세와 기암괴석·천구만별이 어우러진 능선, 골골이 흐르는 계류, 무성한 숲과 풍성한 생태, 거기다 용출하는 약수터까지 금정산은 명산·거산의 조건은 두루 갖췄다.
산악인이자 시인인 권경업씨는 이 산의 ‘금쪽같은 물’을 매력 포인트로 꼽는다.
“금정(金井)은 이름부터 시적이다. 기세도 대단하지만 능선 곳곳에 좋은 물을 머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고당샘, 바람재 약수터, 수박샘 등은 모두 용출 약수다. 산성막걸리는 금정산의 명수가 빚은 토주다. 좋은 물이 사라진 이 시대에 금정산은 물의 진정한 가치와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2001년이 해매듭되는 한겨울, 마땅히 갈곳없고 쉴곳없는 이들은 금정산을 찾아보심이 어떨 지. 거기엔 ‘텅빈 충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니.
/ 박창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