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접수
‘공습’이 시작됐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현란한 공습에 망원(望員)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북풍이 건듯 불던 지난달 중순, 공습은 예상대로 무차별로 전개됐다.
[낙동강 하구의 작은 모래톱인 맹금머리섬은 고니들의 안식처다. 고니의 힘찬 날갯짓은 막힌 가슴을 확 뚫어준다.]
놈들의 공격목표는 을숙도를 정점으로 한 낙동강 하구. 선발대는 날랜 가마우지 편대였다. 스텔스기를 닮은, 새까만 가마우지들은 하구둑 상공에서 한바탕 유격전을 펼친 뒤 바로 본진 2천~3천마리를 불러들였다. 놈들은 하구둑 턱밑, 배들이 오가는 접근수로 제방에 진을 치고 하얀 똥을 싸 갈겼다. 진지구축이 완료됐다는 표시다.
가마우지 편대가 길을 내자, 수천의 쇠기러기가 하구둑을 넘었고, 뒤따라 청둥오리, 쇠오리, 고니, 논병아리가 수백~ 수천마리씩 후발대로 속속 낙동강 하구 모래톱에 도착했다. 도시의 망원들은 숨죽이고 이 광경을 보고했다.
놈들의 무기는 기껏 날개와 부리였다. 제 몸을 쳐서 날 때, 놈들이 떨어뜨린 깃털에는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의 자작나무 숲 향기가 풍겼다. 놈들의 연합부대는 공격개시 보름이 채 안돼 낙동강 하구를 접수했다. 아름다운 솜씨였다.
을숙도와 하구의 모래톱에 지천으로 솟은 갈대들은 말갈기같은 허연 꽃술을 흔들며 갈채를 보냈다. 2001년 11월초 만추의 낙동강 하구에는 이렇게 또하나의 철새 공화국이 들어섰다.
[가덕도 연대봉에서 굽어보는 낙동강 하구의 전경은 장엄한 국토를 묵상하게 한다.전면에 보이는 바다와 육지는 대부분 철새도래지다.]
#고니를 찾아서
지난 3일 정탐(偵探)들은 썰물때를 맞춰 낙동강 하구 갯벌을 뒤졌다. 정탐을 태운 사하구청 철새감시선은 하구둑 옆의 수자원공사 선착장에서 출발해 접근수로를 따라 사하구 장림동 1150번지 맹금머리(하구둑 건설때 을숙도에서 잘려나간 섬) 쪽으로 나아갔다. 현지 지리에 밝은 철새감시선 선장은 맹금머리 북서쪽 상단 모래둔덕에 배를 대고 정탐들을 상륙시켰다.
온통 뻘판. 발딛는 곳마다 갯벌의 속살이 장화밑창에서 물컹거렸다. 갯벌표면엔 퇴적물의 정교한 스펙트럼이 물이랑을 내고 있다.
2㎞를 게처럼 기다시피해 마침내 고니의 진지 전방 100곒까지 닿았다. 놈들은 먼산을 보고 있다. 큰고니의 덩치는 예상보다 컸다. 덩치작은 사람만하다. 망원들의 상세 보고에 따르면, 놈의 전장은 120~150㎝, 날개를 펼치면 길이가 210㎝나 된다.
이 화려무쌍한 놈들은 무슨 영문인지 죽기살기로 해마다 낙동강 하구를 찾고 있다. 지난 99년에는 2천마리, 2000년에는 3천마리가 왔다. 전세계 고니의 4~5%다. 정탐이 이날 목격한 고니떼는 약 500마리. 큰고니·고니·흑고니(모두 천연기념물 201호)가 섞여 있다. 망원들은 고니가 친정(親庭)에 오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고옹- 고옹- 꽥-. 갯벌이 쩡쩡 울린다. 호른소리 위에 옥퉁소 가락이 흐르는 소리. 놈들은 가슴에 나팔을 품고 있다. 가슴뼈 속으로 둘둘 말려 있는 놈의 기관이 나팔효과를 낸다.
놈들이 정탐을 눈치챈 모양이다. 목을 수직으로 곧추세우는 꼴이 날 기세다. “날아!” 카메라 정탐의 외침에 고니들이 화들짝 날아오른다. 날개를 무겁게 퍼덕거리면서, 발로 차듯이 타타타 지면을 박차고, 달음박질치며 길게 활주를 하다 허공으로 솟구친다. 흡사 비행기의 이륙장면이다. 놈들의 비행편대는 사선 또는 V자 대형이다. V자는 진지사수의 의지같다.
#생명의 자궁(子宮) 갯벌
빠질 물은 다 빠졌다.
정탐들은 돌아나오는 길에 갯벌을 구경했다. 만추의 함치르르한 햇살이 갯벌의 물기를 거두어가면서 갯벌 표면에 수억만개의 구멍이 드러나 있다. 구멍위로 엽랑게와 갯지렁이가 머리를 빼꼼 내밀다 구멍속으로 쏙 숨어든다. 이 구멍으로 갯벌은 숨을 쉰다. 깨알같은 흙구슬은 놈들의 취식 흔적이다. 손톱만한 콩털게와 바늘 끝만한 작은 새우도 있다. 요놈들은 가슴에 갑옷을 입고 있다. 사(射)거리 밖에는 쇠기러기떼가 낙엽처럼 내려앉아 구멍을 쪼아댄다.
갯벌의 먹이사슬은 생명순환의 패러독스다. 갯지렁이와 게는 뻘(개흙)에서 뻘을 먹고, 조개는 물이 있는 모래뻘에서 염류를 먹고 산다. 물고기들은 게를 잡아먹고, 새들은 조개의 살을 빼먹는다. 갯벌에 질펀하게 달아붙은 이 생명들을 새들과 사람이 나눠 먹는다. 먹이사슬이 아름다운 것은, 다투지 않는 배분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낙동강 하구 갯벌은 여전히 뭇 생명을 피워올리는 거대한 자궁으로써 유용하고 가치롭다.
#조망(眺望)·조감(鳥瞰)
가덕도 연대봉(459곒)에 오르면 낙동강 하구의 너른 가슴이 활짝 열린다. 밝은 날, 눈 크게 뜨면 까마득히 김해평야가 가물거리고, 서에서 동으로 녹산·신호공단- 신호대교- 명지주거단지- 을숙도-하구둑- 신평장림공단 - 다대포 전경이 희미한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해수면에 불룩한 모래톱들, 진우도-장자도-신자도- 백합등 - 맹금머리- 신생도도 시야에 잡힌다.
위성이 원격탐사해 보여주는 낙동강 하구는 장엄한 국토를 묵상하게 한다. 백두대간의 빗장 사잇길을 따라 태평양으로 굽이쳐 바다를 품는 그림은 범상히 볼 것이 아니다.
낙동강 하구 철새도래지(천연기념물 제179호) 2천8백만평은 광막하다. 넓이가 이럴진대 그 깊이와 높이를 누가 헤아리랴. 새들의 조감(鳥瞰)은 어떠할까 궁금하다. 철따라 진기한 새가 깃들이고 물따라 갯 것들이 연중 잔치를 펼치는 생명의 터전. “이런 자연을 가진 당신네가 나는 부럽다.” 부산에서 3년째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습지전문가 닐 무어스는 낙동강 하구를 찾을 때마다 이 말을 반복한다. / 박창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