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곡. 해풍
오륙도는 바람과 빛과 물의 나라다. 바람은 바위섬의 이마를 말리고, 비는 바위섬의 어깨를 씻기며, 빛은 바다를 쪽빛으로 물들인다.
해풍은 무시로 분다. 해풍의 매운 회초리가 바위섬에 가르친 것은 풍화(風化). 오륙도의 바위섬 암벽과 갯바위에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해풍이 갈고 깎고 다듬은 조각품들이 늘려있다. 오륙도를 조각한 것은 바로 해풍이다.
[사진설명-오륙도 방파제 쪽에서 잡은 오륙도의 섬 네개 . 왼쪽부터 수리섬 , 송곳섬 , 굴섬 , 등대섬이다 . 방패섬과 솔섬은 육지와 거의 붙어 있다 .]
가까이 다가가 보면, 바위섬 구석구석이 매력 덩어리다. 기암이 괴석을 물고, 괴석이 기암을 떠받치고, 그 틈에 방초가 움트고, 그 속에 새가 깃들이고 있다. 갯바위에 귀를 대면 해풍의 밀어가 들려올 듯 하다.
#2곡. 해국(海菊)
바다국화. 바위벼랑 가파른 돌틈새에 지그시 피어나는 연한 자줏빛 생명. 저 질기고 억센 이파리를 누가 꽃이라 할까.
해국은 오륙도의 자생 초화다. 구절초와 흡사한, 갯고들빼기와 더러 혼동하는, 그렇지만 바다기운을 머금어 이들 꽃과는 엄연히 다른 꽃. 가을철 오륙도 바위섬에는 해국이 군데군데서 잔치를 벌인다.
시방 등대섬과 솔섬, 수리섬의 해국들은 꽃망울이 불퉁하다. 이달말께는 창공으로 활짝, 쟁반같은 꽃잎을 펼칠 것이다.
해국이 피면 오륙도는 꽃몸살을 앓는다. 오륙도의 해국은 멀리서도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큼, 꽃잎이 크고 꽃빛이 선명하다. 갯바위 틈새를 곱게 수놓는 해국은 무인지경의 오륙도가 발산하는 향기다.
#3곡. 해녀
박영순(64) 할머니는 용호동 갯가의 해녀다. 물질 경력 30년. 진절머리나는 물질이지만, ‘배운 기 그거라서’ 오늘도 물질을 해야 한다.
오륙도를 중심으로 인근 백운포와 이기대 앞바다가 할머니의 일터다. 까만 잠수복과 수경, 바구니 갈고리 호미를 챙겨 오전 8시께 바다에 들어가면 점심녘에야 뭍에 오른다.
지난 6일 오후 오륙도 선착장 옆 좌판. 박 할머니는 손수 채취하고 장만한 해산물들을 펼쳐놓고 삼삼오오 찾아드는 낚시꾼들을 붙잡고 있었다.
돌멍게(멩게), 멍게(멍지), 성게(앙장구), 고동, 전복, 소라, 문어, 게(끼), 담치, 석하…. 모두 오륙도 해역에서 나는 해산물이다. 할머니가 앙장구라 부르는 성게는 돈도 안되는 것이 일은 독하게 많다.
“자연산이요. 좀 사 드슈.” 3천원을 내자 익힌 담치 한 바가지가 나왔다. 벌이를 묻자, 할머니는 콧등을 찡그린다. “잘 될 땐 5, 6만원 건지고, 안될 땐 3만원도 못만져. 고눔의 콜레라만 아니었어도….” 10년전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는 그래도 물질로 아들 둘, 딸 넷을 건사했다고 말했다.
오륙도 앞바다는 박 할머니와 같은 용호동 해녀 30여명을 거뜬히 먹여 살리고 있었다.
[사진설명-오륙도 바위섬 곳곳에 자생하는 해국]
#4곡. 오륙귀범(五六歸帆)
해가 저물면, 오륙도의 너울은 발갛게 출렁거린다. 낮에 오륙도를 돌아 나갔던 고깃배 낚싯배들이 슬금슬금 돌아오고 있다. 옛날 해운대 사람들은 이 무렵의 정취를 ‘오륙귀범’이라 노래했다. 만선을 이룬 배들이 횐 돛을 펼쳐달고 갈매기를 앞세워 오륙도를 지나는 정경이 아련하다.
불그스레한 노을빛에 물드는 오륙도가 다시 가물거린다. 얼핏보면 다섯섬, 잘 보면 여섯섬이다. ‘오륙’의 비밀은 방패섬과 솔섬 사이의 폭 98㎝, 높이 9곒의 해식동(海蝕洞)이 숨기고 있다. 밀물 때 해식동에 물이 차면 섬은 둘이 되고, 썰물 때 바닥이 드러하면 하나가 된다. 하지만 선인들은 ‘오륙’을 시야비야하지 않고 그냥 ‘오륙’이라 했다. 시인 이은상의 노래를 들어보자.
‘오륙도 다섯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흐리면 한 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흐리락 마르락하매 몇섬인 줄 몰라라.’
시인은 헷갈림을 즐기고 있다. 오륙도의 묘미는 바로 이것. 다섯섬도 좋고 여섯섬도 좋은, 있는 대로 보고, 보는대로 느끼는 삶의 여유와 융통성. 이런 ‘열린 시야(視野)’를 펼쳤기에 오륙도는 부산항의 멋진 파수병이 된다.
/ 박창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