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 말뚝이도 한 잔 먹고 대부인 마누라도 한 잔 먹어, 일배일배 부일배(復一杯)에 취흥이 도도하여 대부인 마누라도 청춘이오 소인 말뚝이도 청춘이라, 양청춘 마두쳐서 동방화촉이 밝더이다.”
수영야류의 양반과장 중 양반의 관념적이고 위선적인 허위와 부패를 비판하던 말뚝이가 양반의 어머니와 동침했다고 폭로하면서 양반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장면이다. 수영야류에서 말뚝이는 패러디와 상말로 능청스럽지만, 양반에 대한 반항과 풍자는 신랄하다.
[사진설명-수영야류 중 저항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양반과장의 한 장면 . 얼굴이 붉고 여드름까지 난 건장한 말뚝이 () 양반들을 조롱하고 있다]
수영야류(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는 부산의 대표적 전승 민속예술이다. 제주, 안동,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초청을 받아 매년 20여차례 원정 공연을 하고, 일본 중국 그리스 독일 우크라이나 등에서 10여차례 해외공연도 가졌다. 수영야류가 이처럼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그속에 스민 ‘부산정서’가 독특한 맛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9일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수영야류 중요문화재 지정 30주년 기념공연은 한마디로 수영야류의 진면목을 보여준 한판 들놀음이었다. 당시 운집한 5천여명의 시민들은 소위 대중적이고 고급한 문화(?)에 밀려 날로 시들해지는 부산의 전통예술을 보고 감동의 눈시울을 붉혔다.
공연을 지켜봤다는 최영철 시인은 “수영야류는 수영지역민들의 놀음만이 아닌 부산시민들의 놀음이다. 양반에 대한 반항과 풍자, 거침없이 쏟아내는 막말은 부산사람들의 기질을 엿보게 했다. 이게 바로 부산정서가 아닌가 느꼈다”고 말했다.
경성대 배학수(철학과) 교수도 “수영야류의 4과장 중 말뚝이의 역할과 양반을 잡아먹는 영노의 역할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의에 대한 저항의식이 본능적으로 배어있는 부산시민들의 기질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최시인과 배교수가 말하는 수영야류와 부산기질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40여년간 야류(들놀음)를 줄곧 연구해온 민속학자 정상박(동아대 명예교수)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조선왕조 때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들, 즉 부산지역 사람들에겐 과거를 보지 못하게 했다. 부산지역은 왜구가 호시탐탐 노리는 변방지역(수영엔 지금의 해군사령부격인 좌수영이 있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늘 생명의 위협을 받고 거칠다는 조선왕조의 고정관념과 일치하는 것이다.”
[사진설명-수영야류 예능보유자 태덕수 (왼쪽)씨가 연희자들에게 동작을 수정해주고 있다 .]
과거도 못보게 하는 지역, 그렇지만 입에 풀칠하고 목숨부지하기 위해서는 또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곳. 이러한 상황에서 생산현장의 사회문화라 말할 수 있는 수영야류가 배태됐다. 이는 곧 노동을 중시하는 현실속의 문화로, 관념적·당위론적인 양반문화와는 태생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권위를 내세우는 양반에 대한 말뚝이의 패러디는 그래서 부산사람들의 기질과 닮아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다. 수영야류에 등장하는 양반들은 타도해야 할 부패한 양반 그 자체일 수도 있지만, 세상의 불의일 수도 있다. 이러한 수영야류의 ‘말뚝이 기질’이 3·15 부정선거와 부마항쟁 등의 저항의식으로 이어졌다는 유추는 무리가 아니다.
올해 초부터 수영야류를 전수받고 있는 캐나다인 디온 놀만(29·영어강사)씨는 “수영야류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느껴지고 무언가 모를 분노가 차오른다”고 말했다. 양반을 잡아먹는 영노역을 종종 맡는다는 디온 놀만씨가 말하는 ‘분노’는 세상의 불의에 대한 반감인지 모른다.
정상박 교수는 “고상한 척 하는 양반문화보다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생산현장에서 체험하며 터득한 소박한 생활의식, 이것이 부산의 정서이며 수영야류는 이를 노동현장에서 자연스레 표출한 놀음”이라고 설명했다.
수영야류는 보다 많은 생산과 마을의 복을 기원하는 제의 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영야류에 필요한 탈을 만들어 탈제를 지내고, 당제당의 고사, 그리고 놀이 후 탈소각제를 지내는 그런 원초적인 의식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수영야류의 4과장인 양반과장, 영노과장, 영감·할미과장, 사자무과장에 앞서 분위기를 띠우는 길놀이에는 수영지역민들은 물론이고 동래 부산진 다대포 지역민들까지 수천명이 와서 긴장대(우주목의 의미)에 등을 달아 따라 다니며 같이 놀았다고 한다. 이 점은 다른 지역의 오광대 놀이와 다르다. 다시말해 놀이꾼과 구경꾼의 구별이 없는 것이다. 수영야류는 길놀이를 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인 ‘질꾸내기’를 따라 양산도패와 기생들까지 따라붙고, 참가한 사람들과 어울려 덧뵈기춤을 추면서 장기자랑까지 한다. 참가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길놀이 행렬은 1㎞나 되었다는 말도 있다. 이러한 놀이를 통해 부산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을 다지며 말뚝이의 기질을 되새겼다.
4대째 수영야류를 전승시키고 있는 수영야류 예능보유자 태덕수(70·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씨는 “수영지역에 전통민속예술로 수영야류 외에 좌수영어방놀이와 수영농청놀이가 있지만, 수영야류는 부산시민 전체의 놀이였다”고 말했다.
수영야류의 매력에 스스로 반했다는 정상박 교수는 “수영야류를 구경할 때는 스탠드에 앉지말고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같이 땅바닥에 신문지 깔고 퍼질러 앉아야 한다”면서 “웃기면 박장대소하고, 신명나면 ‘좋다’하고 추임새를 넣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부산의 정서가 새록새록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 글=조해훈기자
/ 사진=박수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