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마다 무료 노인학교를 운영해왔다. 15년을 계속했으니 에피소드가 한두 가지 아니다. 재작년 5월로 기억된다.
가락초등학교 시절 주민들이 연 경로잔치에 갔을때다. 마침 내가 심부름을 하여 원로 가수 김상국 선생을 초청한 터였다. 그러나 행사당일 김상국 선생으로부터 가덕도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는 연락이 왔다. 부득이 자투리 시간을 내가 메워야 했다.
나는 한시간 동안 그의 전매 특허이기도 한 ‘쾌지나칭칭’과 ‘아리랑’ 같은 민요를 불렀다. 교장이라는 신분을 잊고 ‘비내리는 고모령’을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을때 김상국 선생이 나타났다. 그와 나는 마이크를 주고 받아가며 노래 잔치를 벌였다. 운동장 전체가 용광로 같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두어 달 뒤다. 어느 라디오 방송국에서 섭외가 왔다. 김상국 선생이 새로 진행을 맡은 프로가 있는데 전화 대담을 좀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OK 했다. 구수한 노래도 그렇지만 그의 서민적인 인간미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수화기를 통해 그와 나는 우스개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끝날 무렵 약속을 했다. 그가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고 내가 ‘부산 갈매기’ 등을 불러 녹화를 해보자고.
그후 1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노래에 매달려 살고 있다. 마침 지난 7월, 부산의 지명이 나오는 흘러간 옛 노래 18곡을 녹음해 1천개의 테이프에 담았다. 부산 시민이 부산의 노래를 부르면 포용(包容)의 정서가 되살아나고 나아가 지역 감정까지 타파할 수 있게 되리라는 메시지를 담아서 말이다.
부산의 경제며 문화가 타 시도에 비해 뒤진다는 얘길 곧잘 듣는다. 이런 의기소침을 신명으로 바꾸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 중심에 부산이 낳은 가수 김상국 선생 같은 분이 섰으면 한다. 김상국 선생과 더불어 이런저런 노래를 부르면 막힌 가슴이 시원히 뚫릴 것 같다. 연말이 되기 전에 테너 색소폰을 든 그를 한번 만나고 싶다.
/ 이원우 / 소설가·부산 명덕초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