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정신을 이야기하려 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은 요산(樂山) 김정한 선생이다. 그런데 요산정신을 말하게 되면, 그의 문학정신으로서의 비판의식, 저항의식이 강조되고 그것 때문에 요산의 한 면만 두드러지게 드러나 진면목은 오히려 감추어져 버린 듯 하다.
요산의 저항·비판의식이 문학정신이라면 인간적인 면은 지극히 여린 또는 다감하고 감싸안는 너그러움이다.
내가 대학강단에 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요산은 우리나라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회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나를 불러 ‘정신이 바르게 박힌’ 사람들에게 은밀히 가입을 권유하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가입원을 쓰려고 했더니 용지를 뺏어 버렸다. “자넨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나 열심히 하게.” 못내 섭섭했다. 뒷날에야 그 위험한 일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르게 하지 않겠다는 배려였음을 알았다.
돌아가시는 자리에서 요산은 자식들과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 보시며 ‘너그는 이 고통을 어떻게 견딜래’ 했다. 이 말씀은 너무나 인간적인, 여리고 다감한, 죽음의 고통을 가장 솔직히 보여 주신 것이다.
요산은 싫음과 좋음, 옳고 그른 것이 아주 분명했지만 그 분별 이상으로 이들을 감싸안아 구별하지 않는 넉넉한 품을 보였다. 적이 아니면 동지로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나와 남이 다를 수 있고, 다르기 때문에 만나고 모여 이야기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사는 너그러움…. 비판과 저항정신 못지 않게, 이를 뛰어 넘은 자리에 요산의 진정한 정신이 있다.
/ 김중하 / 문학평론가·부산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