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이 땅의 갯벌은 ‘개발’의 미명 아래 사라져가고 있다.
김 파래 백합 바지락 등이 생산되는 어민들의 삶터이자 생태계의 지표인 철새가 공존하는 ‘생명의 땅’인 갯벌이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대규모 간척과 매립, 하구둑 공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갯벌과 더불어 대대로 살아온 마을공동체도 뿌리째 뽑히고 있다.
연안 습지인 갯벌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모한 간척사업을 막는 일이 시급하다고 환경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현재 가장 심각한 것은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방조제 33㎞를 축조해 2만8천3백ha의 농지와 1만1천8백ha의 담수호를 조성할 목적으로 지난 91년 착수된 새만금 사업은 현재 수질오염 문제로 인해 공사중단 여부를 놓고 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현재 19㎞까지 방조제 공사가 진행된 상태에서 수질 오염으로 ‘제2의 시화호’가 될 우려가 크다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조차 새만금 사업 추진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사업추진 측이 갯벌 생태계의 가치를 과소 평가하고 있고, 조사단의 경제성 분석은 수용할 수 없으며, 만경강-동진강 유역 분리 추진방안 등 제시된 수질 대책도 미흡하다. 따라서 사업추진 결정을 유보할 것’을 완곡하게 건의하고 있다.
개발 주체인 농림부는 식량안보 차원의 쌀 생산이나 수자원 확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 200여개 지역 사회단체로 구성된 새만금갯벌 생명평화연대는 “쌀 생산을 위해선 간척사업이 아닌 농정혁신이 선행돼야 하며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드는 새만금 수질 개선비가 한강수계 수질 개선비의 3배에 이르며 수질관리 대책을 총동원해도 5급수 수질로 당초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며 대통령의 결단으로 사업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새만금 갯벌의 매립은 미래세대의 자산을 현세대가 파괴하는 세대 윤리로부터의 일탈일 뿐 아니라 새만금 갯벌에 깃들여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을 압살하는 생명윤리의 파괴입니다.” 지난달 새만금 간척사업 저지 범국민집회에서 열린 종교계의 기도는 간절하기까지 하다.
갯벌에 대한 매립의 유혹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개발자들이 갯벌의 생산성을 무시한데서 나온 것이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갯벌의 생산성에 대한 자료조차 축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만금갯벌 생명평화연대가 지난달 초 입수해 공개한 해양수산부 보고서에 따르면 새만금 간척으로 전국 갯벌의 8%에 이르는 2만8백ha의 갯벌이 손실되는데 이는 연간 약16조원의 자연정화 기능을 상실하는 것이다. 전북도의 9천여 어업가구가 잃게 되는 연간 총생산액만 1천4백여억원에 이른다. 전국 패류생산의 50%를 넘는 백합 등 새만금지역 패류의 소멸, 각종 어류의 생육산란장 상실, 대형 하구생태계의 소멸, 알락꼬리마도요 넓적부리도요 등 세계적 희귀조의 서식지 훼손 등 재앙적 피해가 예상된다. 게다가 동진강과 만경강의 수질악화로 인해 간척사업의 당초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99년 3월 순천시가 순천대 지역개발연구소에 의뢰한 순천만 생태계조사 용역보고서(책임자 순천대 생물학과 박기영 교수)는 순천만 갯벌 및 갈대밭 2천7백ha의 경제적 가치가 이를 농경지로 전환할 때 나오는 연간 곡물생산액(1백16억원)의 2배가 넘는 연간 2백45억원에 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순천만 갯벌의 경제적 가치는 정화기능이 연간 1백45억원, 수산자원 생산기능이 83억5천만원, 심미적 기능이 16억2천만원 등으로 모두 2백45억원에 이른다. 이는 철새 도래지 및 서식지로의 기능, 태풍 및 홍수 피해 저감기능 등은 제외한 것이다.
지도를 펴놓고 우리나라 서남해안을 둘러보면 매립 위협에 놓여 있지 않는 갯벌이 거의 없다. 강화도 남단 갯벌은 전세계 600여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는 천연기념물 205호 저어새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지만 영종도 신공항의 건설과 강화군의 해안도로 건설 등으로 야금야금 사라지고 있다. 인천지역도 송도매립지공사로 동막갯벌이 사라졌고 국제적인 희귀조인 검은머리갈매기의 번식지도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순천만도 하도정비나 농경지내 도로확장 및 비닐하우스의 증가 등으로 흑두루미의 서식지가 엄청나게 줄어들고 있고, 사천지역의 곤양천 하구 모래갯벌에는 티타늄 채취를 위한 광업권 허가가 추진되고 있다.
가까이는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의 전세계 개체의 10%가 매년 찾아오는 세계적인 도래지인 낙동강하구도 부산시의 을숙도 명지대교 건설 및 명지주거단지의 고층화 계획, 서부산권 개발계획, 신항만 건설 등으로 서식지 파괴 위협을 받고 있다.
습지와 새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이처럼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물새가 그 지역 생태계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98년 봄 통과철새 조사 자료를 보면 새만금 사업이 추진중인 동진강 하구가 12만6천여마리, 만경강이 6만여마리로 국제조류보호상 이 지역이 매우 중요한 곳임이 증명됐다.
한편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는 갯벌매립 대신 생태관광 차원에서 갯벌센터를 조성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강화도에 갯벌센터가 들어서며 마산 봉암갯벌에 갯벌생태학습장이, 낙동강 하구에서도 을숙도생태공원 등이 추진되고 있다. 영국의 티치웰갯벌은 지난 53년까지 간척 농지였으나 조수에 의해 침수된 이후 영국왕립조류보호협회(RSPB)가 지난 73년 이 땅을 구입해 20년에 걸쳐 습지로 복원한 사례도 있다.
한국교원대학교 생물교육과 김수일 교수는 “새는 습지에 6천만년 전부터 적응해 살아왔으며 갯벌을 매립해 농지화할 경우 생태계 파괴는 물론 경제성 면에서도 실익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며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간척사업을 중단하고 연안습지인 갯벌보전을 위한 국가적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해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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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지와 `람사회의`
2002년 11월 스페인에서 제8차 람사회의가 열린다. 지난 99년 5월 제7차 코스타리카 람사회의에 이어 3년만에 열리는 국제회의로 21세기 습지보전의 비전을 제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인 람사협약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현재 강원도 용늪과 창녕 우포늪 등 2곳만 람사지구로 등록해 놓은 상태이다. 람사 기준에 해당하는 낙동강하구, 순천만, 강화도 갯벌 등 국내의 많은 갯벌이 아직 람사지구로 등록되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스페인 람사회의를 준비하고 있는 국내의 대표적인 민간단체로 전국습지보전연대회의(집행위원장 이인식)를 들 수 있다. 습지보전연대는 지난 97년 만들어진 단체로 현재 환경운동연합 마창·사천환경운동연합, 강화도시민연대,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남해환경보전위, 습지와 새들의 친구 등 18개 습지보전 단체가 결합된 네트워크이다. 이 단체는 지난 99년 한국 람사보고서를 준비했으며 오는 2002년 람사보고서도 준비중이다.
습지보전연대의 한국습지보전 전략은 △지역별 상황에 맞는 보전전략의 수립 △전략의 합의를 통한 실질적 보전운동의 유도 △생물종 다양성 유지와 자연자원의 현명한 이용 및 야생동식물의 서식지 보호운동 등 중장기계획 수립 공유 △국제적인 연대 및 전략 공유 등이다.
습지보전연대는 이를 위해 올해 봄 가을에 수도요·물떼새를 중심으로 조사를 펴기로 하고 2001~2002년 겨울철 월동물새 조사, 2002년 봄 도요·물떼새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지난 28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사천만 광양만 마산만 등 남해안 갯벌을 대상으로 한·일민간 공동조사를 하는 것도 람사보고서 준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습지보전연대는 지역별 습지현황 및 람사지구 습지보전지역 관리 실태 등을 조사한 뒤 올 가을쯤 2002년 람사회의 참가를 위한 국내 민간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습지보전연대 김경원 사무국장은 “2002년 스페인 람사회의는 습지의 가치와 현명한 이용방법을 찾는 회의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우리나라 지역 갯벌의 모니터링과 함께 현명한 이용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김해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