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해수욕장과 금산 보리암으로 유명한 남해. 그러나 ‘자연이 살아숨쉬는 깨끗한 남해’도 청정해안의 갯벌이 있기에 가능하다.
강진만 구절양장 해안이 훤히 드러나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은 갈매기와 어울려 갯벌서 조개 캐기에 여념이 없고, 게들이 전차군단처럼 갯벌을 장악하는 곳. 남해에 가면 갯벌의 생명력과 갯마을 사람들의 신명을 만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백로를 품고 사는 남해안의 습지에서는 선비의 넉넉한 마음까지 엿볼 수 있다.
최근 남해 갯벌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남해 갯벌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남해를 제대로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됐다.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물새들의 휴식처인 남해 갯벌을 둘러보기 위해 우선 남해군 설천면 관음포쪽으로 가보자.
남해대교를 지나 오른쪽 해안을 따라 가다보면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적이 나타난다. 노량해전에서 유탄에 맞아 순국하신 충무공의 영구를 맨처음 모셨던 이락사가 여기 있다. 관음포 선착장에 서면 사뿐히 들어앉은 호수같은 바다에 이락사가 정자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바다엔 바다비오리 흰뺨검둥오리 흰뺨오리 댕기흰죽지 등 수십마리가 눈에 띤다. 뾰족한 댕기를 날리며 몇마리씩 짝을 지어 유영하는 바다비오리는 영락없이 ‘터프가이’를 연상케 한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갯내음과 함께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남해읍내로 접어들어 남해교육청 길을 따라가면 아산리 봉전마을 학림사 뒤편에서 백로서식지를 만날 수 있다. ‘봉강산’ ‘봉전마을’이란 이름으로 미뤄보아 오래 전부터 이곳에 백로가 터를 잡았나 보다. 학림사의 입구에 들어서니 이 절이 마치 사람이 아닌 백로를 위해 지어진 것처럼 백로떼가 장관을 이뤘다.
조수보호구역인 이곳 가시참나무와 적송림에는 500~1천마리의 중대백로 쇠백로 왜가리 등 각종 백로류가 서식하고 있다. 나뭇가지를 부지런히 물고 다니는 녀석, 하얀 깃털을 세우며 구애를 하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네 삶과 다를 바가 없다. 우아해 보이지만 시끄럽고 지독한 똥을 싸대는 백로·왜가리와 더불어 살아온 이 마을 사람들의 선한 마음도 읽힌다.
학림사에서 백로를 따라 가다보면 2~3㎞ 아래쪽에 거울처럼 펼쳐진 호수를 발견할 수 있다. 주민들이 ‘읍습지’라고 부르는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죽산매립지. 봉천 하구의 매립지로 남해군 위생처리장, 하수종말처리장 그리고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 있다. 개천 한 모퉁이엔 넓적부리 쇠오리 흰뺨검둥오리 등 물새 10여마리가 놀고 있다. 매립지를 따라 들어가면 갈대숲이 나타나고 호수가 보인다. 제방에 올라서면 남해 바다 강진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방에서 바라본 읍습지는 그림같다. 혹부리오리 청둥오리 홍머리오리 고방오리 쇠오리 물닭 재갈매기 큰재갈매기 붉은부리갈매기 중대백로 쇠백로 왜가리 등 14~15종의 물새가 살고 있다. 멀찍이 백로서식지가 보이고 읍의 전경이 습지 너머 고스란히 들어올 것 같다. “이런 곳에 이렇게 조용하고 멋진 습지가 있다니…”하는 기자의 감탄도 한순간, 지역환경단체 회원은 “남해군이 이 습지를 관통해 4차선 해안관광도로를 낼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했다. 이곳을 바다와 습지, 마을과 환경시설이 어우러진 ‘에코파크’로 만들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읍습지를 빠져나와 광두 해안쪽으로 달린다. 왼쪽엔 청정해역 강진만의 갯벌 곳곳에 백로들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멀리서 날아온 마도요떼도 보인다. 강진만 갯벌은 서해안과 달리 자갈 굴껍질 모래 등이 풍부해 특히 바지락이 많이 난다. 석평 앞 갯벌은 자세히 보니 ‘게들 천국’이다. 갯벌 아낙네 주변을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아 맴돌고 있다.
바다에 취해 한참 달리니 붉은 색의 큰 다리가 보인다. 삼동면과 창선면 지족해협을 연결하는 창선대교이다. 이곳에는 ‘죽방렴’ 혹은 ‘대나무 어사리’라고 하는 원시어업이 남아 있다. 길이 10곒 정도의 참나무 말목 300여개를 갯벌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 역방향으로 V자로 벌려두면 빠른 유속에 기력을 잃은 물고기들이 원통형의 대나무발 속에 모이게 된다.
3월 하순에 바라보니 다리 건너 지족쪽 갯벌에는 마을 사람 100여명이 나와 바지락 캐기에 신명이 났다. 다섯물부터 열두물까지 한 일주일 갯벌이 훤히 드러나면 갯벌은 ‘뻘반 조개반’이 된다. 이날 하루 마을 사람들이 캔 바지락만 20㎏들이 200포대 가량된다. 강진만 갯벌은 바지락 피조개 새조개 게 쏙 낙지 문어 갯지렁이 등을 주민들과 철새들에게 골고루 제공하고 있다.
백로 갈매기 도요떼들의 은빛 날갯짓과 갯사람들의 부지런한 손놀림 그리고 사방이 확트인 청정해역 강진만이 그려내는 남해안의 큰 섬 남해. 그 섬에 다시 가고 싶다. / 김해창기자
●탐조상식
탐조나 습지보전 활동을 할때는 좋은 단체에 가입해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국에서는 100년이 넘는 탐조단체도 많다. 영국의 RSPB(왕립조류보호협회:www.rspb.org.uk)는 지난 1889년 결성돼 현재 1백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에는 지난 1934년 창립된 일본야조회(www.wbsj.org)와 지난 1947년 창립된 재단법인 일본조류보호연맹(www.ask.ne.jp/~jspb)이 대표적인 단체이다. 일본야조회의 회원은 현재 약 5만5천명이다.
국내단체로는 사단법인 한국조류보호협회와 대학생연합야조회(yajo.ewha.ac.kr) ‘습지와 새들의 친구’(www.wbk.or.kr) 등이 대표적. 한국조류보호협회는 지난 80년에 창립돼 현재 철원지회(www.chorwon-kabp.org) 군산지회 등 전국 7~8개 지회가 지역별로 겨울철 철새 먹이주기, 밀렵감시, 부상조류 치료 등을 하고 있다.
대학생 연합야조회는 지난 1982년 서울대 이화여대 대구대 등 전국 8개 대학 야조회 연합동아리로 매월 탐조활동과 겨울철 낙동강철새조사 등을 실시해 매년 한차례 보고서를 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창립된 ‘습지와 새들의 친구’(www.wbk.or.kr)는 매월 한 두 차례 낙동강하구 탐조활동을 하며 국제단체와 연계해 서·남해안 철새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
●지킴이
남해갯벌 지킴이로는 남해군 환경보전위원회 박춘식(33· 남해신문 편집국장.사진 오른쪽) 사무국장과 박성근(34) 총무를 들 수 있다.
박춘식 사무국장은 지난 95년 남해신문에 입사, 지난달 편집국장이 됐다. 그는 지난 96년부터 불거진 하동 갈사만 현대제철건립 반대운동에 적극 나섰으며, 이를 계기로 지난 97년 3월 남해군 환경보전위원회 설치조례 제정을 이끌어내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IMF이후 현대제철 건립계획이 중단되자 이를 계기로 남해지역의 자연생태를 구체적으로 알리기 위해 98년도 남해신문에 ‘남해의 새’라는 시리즈를 기획해 20여 차례에 걸쳐 소개하기도 했다.
그 후 매년 남해지역 습지와 철새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해 최근 남해군 생태지도 및 자연자원의 현명한 이용을 위한 자료집을 발간하는 등 습지보전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박성근 총무도 박 사무국장과 갯벌 탐조기행 및 안내활동에 적극 나서며 남해지역의 생태관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 총무는 지난 95년 후계농업인으로 선정된 이래 지금도 마늘과 쌀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7월부터 남해군 환경보전위에서 일하게 되면서 남해안 갯벌보전운동에 누구보다 열정을 쏟고 있다. / 김해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