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육지로 밀고 들어와 바다 건너 보이는 땅이라고 해남(海南)이라고 했을까. 한반도 서해안 끝자락에 자리잡은 남도의 땅. 호주에서 시베리아로 오가는 기나긴 여행을 하는 수십만 물새들이 마치 신대륙처럼 안착하고 싶은 땅 해남. 그러나 지금 그곳엔 온전한 갯벌이 없다.
시화호보다, 새만금보다도 넓은 갯벌이 간척되고 유일하게 남은 황산갯벌엔 지친 몸을 이끌고 찾아든 도요·물떼새들이 휴식을 찾고 있다. 갯벌이 육지로 바뀐 해남, 영암호 금호호 주변은 물새들에게 시련과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 세발낙지를 잡던 그 많던 아낙네들의 웃음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 곳 갯벌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밀려오는 바닷물을 보고 있노라면 남도의 육자배기처럼 ‘징허디 징헌’ 갯벌의 한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전남 해남지역은 일제시대 이후 10여곳의 크고 작은 갯벌 약 250㎢가 간척됐다. 남아 있는 갯벌의 총면적은 그 10분의 1인 26.7㎢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간척은 80년대 후반의 영산강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 88년 고천암방조제로 33㎢의 갯벌이 사라졌고, 93년 2.2㎞의 영암방조제로 인해 52㎢가, 94년 금호방조제로 인해 갯벌 40㎢가 사라졌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순천으로 빠져나와 국도2호선을 타고 목포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해남읍에서 완도쪽으로 가는 길목에 ‘철새도래지 고천암’이라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표지판을 따라 15분 정도 가다보면 고천암방조제가 나온다. 이곳 고천암은 지난 98년~99년 습지보전연대회의팀이 겨울철 조사기간중 무려 15만 마리의 가창오리를 발견했던 곳이지만 최근 간척지의 개답(開畓)공사로 물새의 종류나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우선 고천암방조제 위로 올라가 본다. 물때를 잘 맞추면 요즘같은 도요·물떼새들의 이동시기엔 마도요나 청다리도요 등 도요새의 비행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앉아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으노라면 동해안과 달리 물이 조금씩 조금씩 저리게 가슴속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방조제 아래 고천암 호수에는 혹부리오리, 댕기흰죽지, 홍머리오리, 고방오리 등을 볼 수 있다. 간혹 귀뿔논병아리 한두 마리가 잠수를 하다 머리를 쏙 내미는 모습이 귀엽다.
고천암 방조제 수문을 지나 진도 방면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황산면 왼쪽에 넓은 갯벌이 나타난다. 이곳이 해남의 유일한 갯벌인 황산갯벌이다. 지난 3월말 취재팀은 이곳에서 민물도요 알락꼬리마도요 큰뒷부리도요 흰물떼새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은 호주나 동남아 등지에서 시베리아 번식지로 향하는 장거리 여행중 한반도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휴식처이다.
농가를 돌아난 둑길을 따라 갯가로 다가서면 민물도요 마도요 개꿩 등 수백마리가 섞여 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민물도요는 여름변환깃으로 바뀌어 배밑이 검게 보인다. 잔걸음을 하는 민물도요, 느린 걸음을 걷는 개꿩 등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마도요나 민물도요는 우리나라에서 월동하기도 하지만 큰뒷부리도요는 모두 호주 등지에서 올라온 녀석들이다. 이곳에 있다보면 해남의 갯벌을 지키고 있는 황산갯벌이 서럽도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황산갯벌에서 나와 금호호 간척지가 있는 우항리쪽으로 가다보면 각종 공룡 모습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금호호는 간척공사가 막 끝난 뒤 몇년간은 황새 재두루미 등도 보이던 철새들의 낙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왜가리 백로 등만 보이고 새들의 종류가 단순화되고 있다고 한다.
목포 방향으로 금호방조제를 지나면 바로 방조제 기념탑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차를 대고 잠시 영암호 일대를 둘러보아도 좋다. 영암호 간척지는 겨울철에는 수천마리의 기러기떼와 가창오리떼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도 지난 99년에는 재두루미가 발견됐고 최근 몇년간 황새도 보이던 곳이다. 개답공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노랑부리저어새도 보이던 이곳도 공사가 본격화되면서 ‘실락원’으로 바뀌고 있다.
영암호 금호호로 들어가는 영산호 물은 현재 3~4급수로 깨끗하지 않다. 지역환경단체 사람들은 기존의 획일적인 수로를 뚫는 개답공사가 아니라 논 가운데 있는 자연습지를 최대한 살리고 철새들에 의한 농작물 피해를 보상해주는 친환경농업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몇년 전 해남지역을 철새도래지로 보호하자는 운동이 일었으나 농민들의 농작물 피해와 재산권 행사 제한 우려로 무산됐다고 한다. 새들과 더불어 사는 ‘공생의 지혜’는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 김해창기자
◎ `탐조상식` 새이름 짓기
소쩍새와 접동새, 검은댕기해오라기와 물까마귀, 황로와 누른물까마귀, 개개비와 갈새, 청머리오리와 붉은꼭두오리는 어떻게 다를까. 사실은 남북한 서로 이름을 달리 부르는 같은 새이다. 이처럼 새는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를 ‘지방명’이라고 한다. 지방명 만으로는 생물을 연구하는데 대단히 불편하므로 국제적으로 통일해 붙인 이름이 곧 ‘학명’이다. 북한에선 접동새라 부르는 소쩍새의 학명은 ‘오투스 스코프스(Otus scops)’이다. 학명은 국제동물명명규약에 따르되 가장 먼저 지어진 이름을 사용하는 ‘선취권’이 허용돼 있다.
현재 한국산 야생조류로 기록된 것은 430여종이지만 이들 새이름이 지어진 근거는 다양하다.
첫째, 올빼미 메추라기 갈매기 등 조상들이 사용해온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경우다. 둘째, 넓적부리 장다리물떼새 검둥오리 등 형태상의 특징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새 약 430종 중 65%인 280여종이 이렇게 붙여졌다. 셋째, 꿩 휘파람새 괭이갈매기 뻐꾸기 뜸부기 등 새 울음소리 등을 근거로 붙여진 이름이다. 넷째, 물수리, 바다비오리, 섬개개비 등 서식지를 근거로 붙인 경우이다. 다섯째, 벌매 개미잡이 저어새 등 식성이나 먹이잡는 행동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여섯째, 노랑할미새 제비갈매기 등 기존의 새이름과 유사종일 때 그 새의 특징을 기존 새의 이름에 붙여 부르는 경우도 있다.
학계에서는 현재 공식적으로는 붉은머리오목눈이로 나온 새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뱁새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등 일부 잘못된 새이름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경성대조류관 조류관보 참고
◎ `지킴이` 이정식.김경완.박종기씨
해남 갯벌 지킴이로 첫 손가락 꼽을 사람은 이정식(38·목포고 교사)씨이다. 해남고 해남공고 등 해남지역에서 1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다 올해 목포고로 학교를 옮겼다. 이 교사는 지난 92년 환경을 생각하는 해남교사모임을 결성해 황산갯벌에 원전을 건설하려는 계획에 반대해왔고 지난 99년 해남습지보전모임을 만들어 활동해왔다. 그는 해남지역의 갯벌과 간척지 새를 조사해 해남이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임을 알려 관심을 끌어냈다. 철새 홈페이지(bird.haenam.org)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요즘엔 영암호 금호호 등의 탐조와 습지보전운동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 이 교사는 탐조활동을 할 때 아들 경재(3·사진)군을 빠짐없이 데리고 다닌다.
목포환경운동연합 김경완(31·mokpo.kfem.or.kr) 사무국장도 습지와 철새 보전에 앞장서면서 각종 현장조사와 교육프로그램을 이끌어가고 있다. 김 국장은 지난 98년 전국습지연대팀과 전남 서남권 철새조사를 함께 했으며 지난 99년 코스타리카 람사회의에 참여했다.
박종기(51)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trust.or.kr) 조사선정위원은 10여년 전부터 서울에서 고향인 해남에 내려와 지역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간척지에 친환경적 농사를 짓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4년 전부터 국회도서관에 드나들면서 국감자료 및 환경에 관한 논문 등을 토대로 영산강 3단계 공사의 문제점을 정리해 정부에 청원을 하고 있다.
또한 하태석(41· 장흥대덕중 교사)씨는 5년 전부터 강진만의 새를 조사해 이 지역이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라는 것을 논문으로 밝혀냈고 지역 탐조활동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 / 김해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