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길 갈대에 실린 갯바람은 봄의 향기를 뿜어낸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에 시베리아 북녘하늘을 응시하던 흑두루미의 울음소리는 지금도 온몸 짜릿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순천만에서 흑두루미를 만나면 햇살과 바람이 하나됨을 느낄 것이다. 설령 만나지 못하더라도 기다림의 환희는 남으리라.
순천만 갯벌엔 인간이 있다. 뻘배를 타고 조개를 캐는 아낙의 뒤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붉은부리갈매기의 귀여움이 봄햇살에 묻어나는 곳. 거친 손으로 반평생 삶을 묻어온 갯벌에 봄이 한창이다.
순천만은 전남 순천시를 중심으로 남해안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순천만의 해안선은 모두 39.8㎞. 갯벌은 갈대밭을 합쳐서 너비가 2㎞에 이르고 길이도 15㎞나 된다. 순천만에는 150여종의 조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 천연기념물 19종을 비롯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13종이 서식한다.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월동하는 곳도 순천만이다.
순천만의 물새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연속으로 들어간다는 마음가짐부터 챙겨야 한다. 가장 먼저 가볼 곳은 대대동 대대들판이다. 부산에서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서순천 톨게이트로 빠져나간다. 연향신도시를 지나 벌교·목포 방면의 외곽도로를 20여분 타고 가다 청암대학앞에 이르면 ‘순천만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나고 10여분 더 가면 대대들판에 닿는다.
순천만의 흑두루미는 아침해가 뜰 무렵 잠자리인 갯벌에서 먹이를 찾기 위해 이곳 대대들판으로 나온다. “뚜르륵 뚜르륵” 긴 목청을 가다듬고 뭍으로 오르는 날갯짓은 탐조객에게 기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지난달 말 취재팀은 이곳에서 150여마리의 흑두루미를 만났다. 경계심이 강한 흑두루미들도 시베리아로 향한 장거리비행을 앞둔지라 먹이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흑두루미떼를 사이에 둔 아스팔트 도로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망원카메라를 댄 취재팀을 안타깝게 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취재팀을 의식했음인지 인근에 흰 트럭 한대가 지나가자 십여마리씩 떼를 지어 날아올랐다. 대대들판을 선회비행하는 것이 마치 작별인사를 하는 듯했다. 흑두루미들은 3월부터 귀향을 시작한다. 지난 4일 마지막 팀이 북녘하늘로 날아갔다고 지역환경단체가 소식을 전해왔다. 오는 10월말에야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대대들판 앞 갯벌에는 검은머리갈매기 왜가리 백로 등 여름철새들이 흑두루미의 빈자리를 메워가고 있다. 이곳의 갈대밭은 떠나는 새들에게 아쉬움의 손짓을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찾아오는 다른 새를 거부하지 않는다.
순천만의 전경을 보려면 대대들판에서 나와 학산리 ‘전망대 가든(061-742-9496)’으로 옮긴다. 순천만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망원경으로 보면 멀리 댕기흰죽지 검은머리갈매기 혹부리오리 등이 노니는 모습이 보인다. 갯벌에 앉은 흑두루미를 볼 수 있는 곳도 여기고 예전엔 저어새를 보았던 곳도 이 장소다. 지역환경단체에서는 예전부터 이 자리에 탐조센터가 서야 한다고 말해왔다.
순천만쪽으로 귀를 기울이자 바람소리에 실린 물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전망대 가든을 지나 마산리 별량지역으로 가면 차진 갯벌을 만날 수 있다. 마을 선착장에서 동네 아낙 수십명이 뻘배를 타고 맛조개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얼굴이 구리빛인 50대 후반의 아낙이 “잘하는 사람은 하루 10만원 벌이도 하는데 나는 절반 밖에 못한다”고 말한뒤 뻘배를 타고 휑하니 사라진다. 뻘배 뒤에는 붉은부리갈매기 한마리가 3~4곒 거리를 두고 졸졸 따라다닌다. 아낙들이 뒤집어놓은 갯벌에서 갯지렁이 조개 등을 주워 먹는 것이다. 이곳 어촌계는 맛조개의 종패를 심어 이처럼 ‘지속가능한 어업’을 일구고 있다. 조용한 호수같은 순천만 갯벌에 봄햇살을 맞으며 맛을 캐는 아낙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이곳을 보고 나서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사람은 방향을 돌려 대대들판을 지나 별량지역과 반대쪽인 상내리 와온갯벌로 가보자. 와온포구에도 별량에서처럼 갯사람들의 삶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선 중대백로, 쇠백로 등 백로류를 만날 수 있고 요즘엔 철늦은 혹부리오리떼와 서둘러 올라온 알락꼬리마도요 민물도요떼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흑두루미의 천국’인 순천만도 근래엔 개발의 열병을 앓고 있다. 한반도에 남은 마지막 흑두루미의 집단월동지가 농지도로나 해안도로의 개발로 위협받고 있다. 시베리아로 날아간 흑두루미들이 매년 잊지않고 ‘제2의 고향’으로 찾아오길 기도한다.
/ 김해창기자
◎ `탐조상식` 새알과 둥지
요즘 도심에서 제비집 보기가 쉽지 않다. 지난달 말부터 강남갔던 제비가 부산 도심에도 보인다고 한다. 어렸을 때 억수같이 내리던 비속에 전기줄에 앉아 있던 제비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제비는 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비를 맞고 있었을까.
그것은 제비집이 오직 새끼를 키우는 육아 전용실이기 때문이다. 딱다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파서 육아실로 삼는다. 논병아리는 늪 위에 풀이나 나무를 모아 뗏목처럼 만들어 그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완두콩만한 알을 낳는 벌새는 지름이 2.5㎝에 불과한 둥지를 만드는데 반해 흰머리수리는 지름이 2.6곒나 되는 둥지를 만든다.
황제펭귄은 둥지를 따로 만들지 않고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이 알을 다리의 물갈퀴 위에 놓고 복부의 피부와 깃털로 덮어 부화시킨다. 참새 등 대부분의 조류는 보통 하루에 한 알, 그것도 아침 일찍 알을 낳고 매나 올빼미 갈매기류는 하루 건너, 수리류는 5일 간격으로 알을 낳는다. 유럽 뻐꾸기는 오후쯤 다른 조류의 둥지에 숨어들어가 자기알을 낳는다.
새들이 둥지를 지을 때 이용하는 재료는 주로 풀이나 작은 나뭇가지 흙 등. 최근 도심에선 플라스틱 비닐 등 비자연물이 많아지면서 새들의 둥지도 예전같지 않다. 낙동강 하구 갈대숲에 있는 개개비의 집이나 집주위 작은 나무 덤불 속에서 발견되는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의 집은 풀 반, 비닐 반인 경우도 많다. / 도움말= 습지와 새들의 친구
◎ `지킴이`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순천만 갯벌지킴이는 사단법인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이사장 김용전·www.sunchonbay.or.kr·061-723-7134)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동사연’은 지난 89년에 만들어졌다.
이 연구소의 야생동물구조센터 차인환(34) 구조대장은 지난 97년부터 순천만 흑두루미 모니터링을 해오고 있다. 한약자원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다.
그는 야생동물소모임 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이 지역에서 왜가리 너구리 등 한달에 10~15건 정도의 부상동물을 치료해주고 있다.
황주찬(32) 사무차장은 학생운동가 출신으로 동사연의 기획실무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순천만문제는 물론 자전거 활성화, 지방자치 참여 등에도 활발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박효정(여·24) 환경분과 책임연구원은 올해 대학 졸업과 함께 순천만 조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돈기(37)씨는 순천만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사진작가이다. 지난 96년부터 순천만갈대 사진을 찍어온 그는 지난 97년 제1회 순천만 갈대제 개최의 숨은 주역이다. ‘선암사’ ‘청학동’ 등 유명출판사의 사진집도 많이 냈다.
환경분과 연구원인 김인철(29)씨는 순천대 환경교육과에 늦깎이로 편입, 순천지역 환경교육 프로그램 만들기에 애를 쓰고 있다. 또한 전국습지를 무대로 활동중인 습지보전연대 김경원(32) 사무국장도 처음엔 동사연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동사연 연구원인 정은주(여·27)씨는 습지전문통역가로 순천만을 찾는 외국인 탐조가 안내 등 자원봉사활동을 아끼지 않고 있다. / 김해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