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백여년 전 갯벌에 향나무를 묻은 매향비가 있고 퇴계 이황 선생이 배를 타고 노닐었던 갯벌. 크고 작은 섬들이 어울려 다도해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사천만.
사천만 갯벌엔 역사가 있다.지금은 대부분 매립돼 농지로 바뀐 그 갯벌 위엔 옛 선조들이 함께 고락을 같이했던 갈매기 오리떼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다. 모래톱이 살아있고 옛 하천의 모습이 그나마 살아있는 아기자기한 갯벌. 산과 강과 바다와 역사가 하나되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사천만은 아름답다.
경남 사천시의 사천만은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를 따라가다 곤양 IC를 빠져나와 좌회전하면 만날 수 있다. 58번 지방도를 따라 서포면 쪽으로 가다 외구리에 있는 비지정문화재인 ‘작도정사’(鵲島精舍)에 잠시 차를 멈춰보자.
조선 중종때 지역 유생들이 퇴계 이황 선생을 모시고 학문을 논했던 곳으로 지난 1954년 정비 복원됐다. 작도정사 아래 도로변에 세워진 ‘퇴계 이선생 장구지소라 새긴 비석 옆에는 작도에 놀러왔다 남긴 이황 선생의 시가 새롭게 건립된 비에 한글로 새겨져 있어 이곳 갯벌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까치섬(작도)은 곤양군 남쪽 십리쯤에 위치해 있다. 섬의 양쪽으로 두 개의 산이 대치하고 있어 문과 같고 조수가 이로부터 드나드니 섬을 고리로 하여 물이 돌아들고 조수가 물러가면 육지가 된다. (…)조수가 물러날 때가 이르니 모두 배를 두고 섬으로 오르고 점심때가 지나서 배를 띄운 곳을 돌아보니 다 평지가 되고 까마득한 황무지가 주렴 그물에 가리어 은은할 따름이더라…’.
사천만 갯벌에서 새를 잘 보기 위해서는 바로 이 곤양천 하구가 좋다. 작도정사에서 곧 바로 좌회전하여 1㎞쯤 차를 타고 들어가면 서포면 조도리가 나온다.
작도정사가 서있는 까치섬 아래는 일제시대 갯벌을 매립해 농경지로 만들었는데 제방을 5리나 쌓아 오리제방이라고 하는 둑이 있다. 이 둑을 따라 내려오는 곤양천 하구가 갯벌과 만나는 지점에는 모래톱이 형성돼 갯잔디 주변으로 청둥오리 혹부리오리 댕기물떼새 등 수백마리가 물 속에서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퇴계 이황이 배를 타고 놀았을 그 하구에 지금도 여름철엔 주민들이 재첩을 잡는다. 모래톱엔 댕기물떼새 10여마리가 마치 운동회를 벌이듯 부지런히 청둥오리떼 주변을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작도정사를 돌아나와 반대쪽 대진리로 가서보면 광포만이 참 크게 보인다. 약 2백만㎡에 이르는 광포만에는 희귀조인 검은머리갈매기 50~60마리를 비롯해, 청머리오리 혹부리오리 등 500~1천마리의 철새들이 겨울을 보내고 있다. 검은머리갈매기는 체구는 작지만 날렵하게 갯벌 위로 내리꽂힌다. 수탉처럼 꼬리가 아래로 처진 멋쟁이 청머리오리의 모습도 망원경에 잡힌다. 다소 멀어서 아른거리지만 갯벌이 참 아담하게 느껴진다. 예전에 배로 다닐 때 가깝던 섬마을들이 육상교통의 발달로 인해 오히려 멀어져 버린 것같다.
그런데 이 광포만에도 광포지방산업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있어 매립 위기에 노출돼 있다.
진사공단의 확장부지로 활용할 계획이나 IMF이후 진척은 되지 않고 있어 그나마다행이라고 지역활동가들은 말한다.
광포만을 돌아 좀 더 가면 고동포마을이 나오는데 지금은 간척지가 됐지만 옛날에는 물길이 지류를 따라 곤양면 흥사리까지 미쳤음을 매향비(보물 제614호)를 통해 알 수 있다. 흥사리엔 매향비가 있는데 고려 우왕 13년(1387년) 때 향나무를 갯벌에 묻었던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가산리는 예전에 조정에 바칠 곡식을 저장하던 조창이 있던 곳이며 가산오광대 또한 유명한 곳. 사천만 갯벌 구석구석엔 조상의 역사가 묻혀 있다.
우리는 과연 천년 뒤의 후손들에게 남길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새보기 좋은 또 한 곳은 사남농공단지가 들어선 유천리 매립지쪽 해안이다. 이곳은 사천강과 가화천이 만나는 곳으로 강에서 쓸러나온 토사가 퇴적되어 모래톱이 발달해 철새들의 먹이감이 많은 곳이다. 이곳을 가기 위해 사천비행장 주변을 지나던 취재팀은 비행장 담벼락 인근 논에서 노닐고 있는 재두루미 한 쌍을 만났다. 비행기 폭음에도 동요하는 기색없이 유유히 노니는 재두루미. 지역활동가들은 올들어 사천에서 재두루미 18마리를 관찰했다고 한다.
매립지인 사남농공단지 앞 해안에는 수천마리의 철새들이 모래톱과 비행장 앞 갯벌에 흩어져 있다. 고니에서 큰기러기, 오리류, 갈매기류, 도요·물떼새 등 다양한 물새들을 볼 수 있다. 가끔 세계적 희귀조인 고대갈매기도 관찰된다고 한다. 반대
편 가화천 하구는 실장어 농어의 산란지역으로 유명하다.작도정사를 둘러본 뒤 시장기를 참지 못해 들른 곤양농협 인근의 진경식당(055-852-6550)의 보리밥 맛도별미다. / 김해창기자
/ hckim@kookje.co.kr
≪지킴이 김점세 이종명 윤병렬씨≫
사천만에는 사천환경운동연합(055-832-2033) 지킴이들이 있다. 사천환경련의 김점세(50) 의장과 이종명(30) 사무국장 그리고 윤병렬(36) 교육분과위원장이 바로 그들.김의장은 지난 94년 삼천포화력발전소 5, 6호기 증설반대운동에 참여했다가 본격적인 환경운동의 길로 나섰다. 96년 환경을 지키는 시민연합 대표를 역임했으며 지난해 시민연합을 개편, 사천환경운동연합 준비위를 결성했고 지난 7일 창립된 사천환경운동연합의 상임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이 사무국장(011-583-7233)은 학생운동가 출신. 그는 수감생활중 생태주의적 접근을 통해 사회를 바꾸어 보기로 결심하고 환경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99년 사천만갯벌 생태조사부터 자원봉사자로 활동해오다 올해부터 상근 사무국장으로 직업 환경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거의 매주 사천만을 둘러보며 탐조활동을 펴고 있다.
윤 위원장은 현재 서포중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사천 전교조 연대사업국장도 맡고 있는 그는 역사기행에 밝다. 지금은 모두 농경지로 변했지만 태어난 고향마을의 매향비를 통해 갯벌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요즘도 가뭄이 심해지면 집 앞 논이 염해를 입을까봐 걱정이라는 그는 최근 서포면과 곤양면 일대의 갯벌기행 코스 개발에 애쓰고 있다.
≪탐조상식 `새와 속담`≫
새는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말과 글 속에도 살아있다. 새와 관련된속담이나 시 등에서 비유되는 새와 관련된 말들은 실제 새의 속성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속담에 ‘꿩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쓰려는 것이 없으면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신 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속담은 북한에서 냉면 국물로 꿩을 주로 쓰는데 꿩이 없을 땐 대신 닭 육수를 사용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또 남에게 어떤 행위를 해놓고 자기가 하지 않은 것처럼 말할 때 흔히‘시치미를 뗀다’고 한다. 이 때 시치미는 매와 관련이 있다. 꿩사냥을 하는 매의 꼬리에 매 주인이 닭이나 꿩의 털을 단단히 묶어 자기나름의 표시를 했는데 이를 시치미라고 한다. 그런데 주인 손을 떠난 매를 발견한 사람이 매를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그 시치미를 떼버렸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고려말 조선초기의 관료 이직이 지은 ‘까마귀 검다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희고 속검은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라는 시는 비유법을 쓴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까마귀는 날개는 검지만 피부는 여인의 살결처럼 희고, 백로는 날개는 희지만 피부는 검다는 것. 옛사람들이 새들을 가까이서 보고 그 특징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도움말 우용태 경성대 조류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