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멎은듯 고즈넉한 정적이 흐르는 곳. 늪을 둘러싼 왕버들 냇버들 군락이 연신 생명력을 빨아올리고 있다.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지닌 경남 창녕의 우포늪에 서면 인간의 역사 자체가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겨울철 보금자리를 틀었던 큰기러기떼도 이제는 북상을 위해 마지막 몸만들기에 한창이다.
우포의 봄은 이들 큰기러기떼의 날갯짓으로부터 온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물과 산, 하늘과 그 속에 새와 풀과 돌들이 서로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있는 곳. 우포에는 넉넉함이 있다. 도시에서 찌든 마음 훌훌 털고 보드라운 흙을 밟으며 둑방길 따라 봄신명에 하루를 걸어도 좋고 억새풀 사이 언덕에 누워 풀잎 바람소리, 따스한 햇살 아래 반나절 눈감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리라.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4개의 늪지를 통틀어 일컫는 창녕 우포늪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연내륙습지이다. 경남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등 4개면에 걸쳐 가로 약 2.5㎞, 세로 약 1.6㎞로 전체면적이 170㏊에 이른다. 서울의 여의도만한 넓이다.
우포늪은 우리나라 지형의 탄생과 그 기원을 같이 한다. 빙하기에 침식곡이 발달해 낙동강과 토평천이 만들어졌다 토평천이 홍수 때에 역수(逆水)현상에 의해서 퇴적물이 쌓여 자연제방이 생기고 그 안쪽에 물이 남아 배후습지성 호수가 형성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우포늪은 그 자체가 자연생태박물관이다. 지난 97년 창녕군 조사에 따르면 우포늪에는 특정야생식물로 지정된 가시연꽃을 비롯해 생이가래, 부들 등 168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중대백로 왜가리 큰고니 큰기러기 등 62종의 조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참붕어 칼납자루 등 어류가 28종, 노린재 잠자리 등 수서곤충이 55종, 두더지 너구리 등 포유류 12종, 파충류 7종, 양서류 5종, 패각류 5종이 조사됐다. 우포늪은 지난 2일로 람사협약 지구 지정 만3년을 맞았다.
철새를 만나러, 봄을 만나러 우포로 가보자. 부산에서는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창녕인터체인지로 빠져나와 오른쪽 합천쪽으로 길을 잡는다. 우포늪 안내판을 따라 10분 정도 가다보면 창녕환경운동연합이 운영하는 우포생태학습원이 나온다. 폐교된 회룡초등학교를 개조해 지난 99년 8월 문을 연 학습원은 각종 전시실과 홍보책자 등을 비치, 우포늪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금까지 이곳을 찾은 사람들만 4만5천여명. 요즘엔 단체 숙식도 가능하다.
우포늪 탐조1번지는 대대제방이다. 유어면 세진리쪽으로 들어가 고개를 넘으면 나온다. 둑에 올라서면 탁트인 우포늪이 한눈에 들어온다. 큰기러기 청둥오리떼가 고향인 시베리아로 가기 위해 부지런히 물풀 등 먹이를 먹고 있다.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거리 여행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큰기러기떼는 지난달말부터 시작해 이달 초·중순까지 거의 대부분 우포를 떠나고 이달 중순부터 5월까지는 필리핀 일본 등 남쪽에서 알락도요나 꺅도요 등 도요새들이 몰려온다.
시멘트와 아스팔트에 젖은 도시인들에게 대대제방은 흙을 밟는 기쁨을 준다. 주변의 밭에는 양파들이 파릇파릇 새싹을 보이고 둑길 곳곳에는 아이들이 풀 언덕에 미끄럼타기를 한 흔적들이 나온다. 동심으로 돌아가 미끄럼을 한번 타보아도 좋으리라.
대대제방 반대쪽인 소목마을 입구 수문 부근에 천연기념물 제205호인 노랑부리저어새와 중대백로 몇마리가 망원경에 아른하게 잡혔다. 그런데 사지포방면으로 둘러 찾아가보니 어느새 멀찍이 반대쪽에 날아가 있다.
소목 입구 수문 주변도 우포늪의 전체 경관을 조망하기에 좋은 곳. 이곳 입구의 ‘소벌’에는 냇버들 군락의 물오르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늪 가장자리에선 큰기러기 청둥오리 청머리오리들이 노는 모습이 살얼음에 비친 햇살에 반사돼 눈부시다. 잠시 언덕에 기대 귀를 쫑긋 세우니 ‘과안~과안~’ 기러기 울음소리가 잡념을 사라지게 한다.
소목 입구에서 할머니 한분이 장구를 갖춰 가기에 물으니 논우렁이를 잡으러 간단다. 이 일도 허가를 받은 주민이기에 가능하다.
목포늪 쪽으로 가다보면 ‘푸른 우포사람들’ 사무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들러 ‘우포8경’ 이야기를 들어도 좋으리라. 우포8경은 왕버들 수림, 반딧불이 축제, 물풀의 융단, 기러기 비상, 가시연의 꽃과 잎, 백조의 사랑, 자대 나뭇배, 별자리 이야기 등이다. 우포늪은 겨울엔 철새의 낙원, 봄엔 왕버들의 천국, 여름은 초록빛 융단세계, 가을엔 가시연과 갈대의 나라가 연출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늪 우포늪도 대부분이 사유지여서 보전과 관련해 재산권 제한에 어려움이 많다. 우포늪 상류 및 유역에서 유입되는 쓰레기 생활하수 축산폐수 공장폐수 등도 심각하다. “람사지구 지정만 해놓으면 뭐하나요. 제대로 보전해야죠” 이곳을 지키는 환경운동가의 뼈있는 한마디다.
그러나 우포늪은 여전히 ‘스스로 그러하다’. / 김해창기자
지킴이 - 창녕환경련 배종혁의장
창녕 우포늪 지킴이로 첫손가락을 꼽을 사람은 창녕환경운동연합(055-532-7856·woopo.wo.to)의 배종혁(63·사진)의장이다. 우포생태학습원의 잔손질을 도맡아 하는 그는 ‘우포대감’으로 통한다. 부인 조순자씨와 학습원에 상주하고 있다. 교편을 놓은 뒤, 마창환경연합 운영위원으로 있다가 지난 97년 창녕환경련 창립과 더불어 의장을 맡았다. 지난 99년 우포생태학습원 개관으로 PSB방송대상을, 지난해에는 창녕환경련이 교보생명 환경문화대상 교육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데 기여했다. 변부곤(50) 교육부장도 ‘우포 가이드’이다.
그는 바쁜 생업중에도 우포늪 생태가이드에 앞장선다. 창녕환경련의 권병오 박준영 간사는 둘다 경북대 93학번으로 환경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다 철새를 사랑해 3년전부터 거의 매주 한번 우포를 찾는 김수경(여·25)씨는 우포늪 철새로 경북대에서 석사논문을 썼다. 짚풀 강사 서정희(35)씨도 우포늪 보전에 앞장서고 있다.
목포늪에 자리잡은 사단법인 푸른우포사람들(055-532-8989·www.knm.net/~woopoman)의 대표 김영덕(48·변호사)씨와 사무국장 오상훈(30)씨 그리고 ‘우포 시인’ 배한봉(40)씨도 우포늪 지킴이들이다.
탐조상식 - 새 불러들이기
새는 먼 곳에만 있지 않다. 도심에서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많은 새들을 만날 수 있다. 까치 집비둘기 참새는 거의 어디서나 만날 수 있고 박새 직박구리 동박새 등도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에 속한다. 나무가 있는 학교 정원이나 뒷동산에만 가도 곤줄박이 노랑턱멧새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 쇠딱따구리 어치 등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새들이 먹이를 찾기 어려운 시기다. 아직 봄철 먹이는 보이지 않는데다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먹이가 다 떨어져 새들이 주택가까지 내려오고 있다.
작지만 마당이 있고 나무라도 서 있는 집이라면 지금 사과나 귤 한두개를 나무에 매달아 놓아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며 “삐~삐~” 울어대는 직박구리나 연초록 고운 빛깔에 흰 눈테가 아름다운 동박새를 만날 수도 있다.
땅콩이나 호박씨 해바라기씨 등 씨앗을 먹이로 준비해 주거나 밀감이나 사과 등을 나무 위에 얹어놓아도 좋다. 양파담는 그물망 같은데다 정육점에서 나오는 소 비계를 조금 얻어다 얹어 놓아도 새들이 모여들 것이다. 외국에는 공원이나 집마당에 먹이통이나 먹이 줄 수 있는 선반같은 것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물도 함께 두면 더 좋다.
이 봄 새 먹이를 주면서 봄을 집안으로 맞아드려 보자. / 도움말= 습지와 새들의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