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에만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느림의 미학’을 알 수 없다. 차만 타고 급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은 도로변에 생명의 갯벌이 숨쉬고 있음을 느낄 수 없으리라. 공장지대 도로옆 하천에 이 겨울 고방오리 흰뺨검둥오리 흰죽지 등 오리떼가 자맥질하며 유유히 놀고 있다. 죽은 하천인 줄 알았던 갯벌에 수천마리의 새들이 보금자리 틀고 갈대가 세찬 바람에 맞서 일어서는 곳. 경남 마산시와 창원시를 잇는 봉암교 밑 봉암갯벌을 걸으면 ‘느린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지금 봉암갯벌은 ‘부활’을 꿈꾸고 있다.
마산 봉암갯벌은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갯벌이다. 지금까지 새만금 갯벌, 낙동강 하구 등 대규모 습지에만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곳은 생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 갯벌을 한번만 둘러보면 습지의 가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은 그런 갯벌이 차동차를 타고 휙 스쳐 지나가는 바로 우리들 곁에 그렇게 있었던 것이다. ‘관심은 사랑에서 나오며 사랑은 존재의 확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마산 수출자유지역과 창원대로를 연결하는 4차선 팔용해안로에 인접한 하천에 봉암갯벌이 있다. 봉암교 위쪽으로 창원천과 남천이, 아래로 마산만이 만나는 곳. 50~100곒의 너비로 2㎞에 걸쳐 흐르는 약 18만여㎡의 갯벌이 바로 봉암갯벌이다. 해안로 건너편엔 삼성테크윈 한국철도차량 등 10여개 공장이 버티고 있다.
차를 잠시 봉암교 밑 공터에 대어놓고 봉암갯벌을 돌아보자. 눈 앞에 드러난 모래톱에는 고방오리가 노닐고, 붉은부리갈매기 재갈매기가 먹이를 찾아 갯벌 위로 낮게 비행하고 있다. “이런 곳에도 이렇게 멋진 새들이 있다니!”
쌍안경 하나만 있으면 봉암갯벌은 한눈에 들어온다. 봉암교 밑 갯가에 있던 고방오리 서너 마리가 취재팀쪽으로 가까이 날아왔다. 그동안 사람이 그리웠을까. 물 위에 반사된 햇빛에 반짝이는 몸매와 유유히 자맥질하는 모습이 한동안 눈길을 붙잡는다. 고방오리는 자태가 빼어나다. 다른 오리에 비해 목이 길고 수놈의 경우 목에 흰줄이 뚜렷하고 꼬리가 ‘핀’처럼 뾰쪽하다. 그래서 영어이름이 ‘핀테일’(pintail)이다. 툰드라에서 날아와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이 곳 해안로의 인도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위주의 도로이기 때문이다. 천천히 걷다보면 건너편 공장지대가 갈숲 위에 솟아있고 멀리 왜가리도 보인다. 봉암갯벌엔 햇살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생명이 있다. 자세히 보면 구석구석에 새가 숨어 있다.
마창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이곳 갯벌의 조류조사를 한 결과 모두 25종 1천5백49마리~2천7백25마리의 새를 관찰했다. 이중 봉암교 밑에서만 붉은부리갈매기 1천4백92마리, 흰죽지 179마리, 갈매기 159마리, 고방오리 70마리, 흰뺨검둥오리 50마리, 재갈매기 46마리, 방울새 4마리 등 모두 12종 2천34마리가 관찰됐다.
해안로 반대쪽인 동원산업 앞 도로를 따라가면 다소 느긋하게 탐조를 할 수 있다. 이곳 하천의 양안은 콘크리트가 아닌 자연적인 모습이 그래도 남아있어 반갑다. 동원산업 정문 근처에서 조심스럽게 차를 내리면 갈대숲 사이로 쇠오리 흰뺨검둥오리가 십여마리씩 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 건너편 삼성테크윈이 있는 자리는 예전엔 백사장이었다고 한다. 봉암갯벌의 또 다른 탐조포인트는 통일중공업 앞이다. 이곳에는 붉은부리갈매기 쇠오리 청둥오리 흰죽지 넓적부리 등이 수백~수십마리씩 보인다. 갈대바람이 출렁이는 가운데 이들 철새를 보고 있으면 갯벌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지역의 40, 50대들은 어린 시절 이곳에서 ‘고시래기’ 낚시를 하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70년대말부터 이곳에 공장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뒤, 봉암천은 지역주민들의 뇌리 속에서도 ‘죽은 하천’으로 잊혀져 왔다. 그런데 이제 이 하천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이 환경단체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봉암갯벌 생태학습장 조성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95년 이 지역 공장에서 폐수방류사건이 있은데다 지난 99년에는 매립이 추진되자 환경단체가 발끈, 봉암갯벌 살리기에 나선 것. 해양수산부가 3억4천만원의 예산을 내놓아 지난해 말 생태복원에 착수 올해말에는 새로운 봉암갯벌을 볼 수 있게 됐다.
이 계획이 잘 추진된다면 주민들은 공장지대에서 귀한 ‘생태공원’을 얻게 될 것이고, 공장은 멋진 주변환경을 얻게 될 것이다. 단지 새를 보기 위한 공원이 아니라 철새를 비롯한 갯벌의 생명붙이들의 고향을 되찾아주는 작업이 될 것이다. 봉암갯벌은 아이들이 즐겁게 낚시를 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고 있다.
/ 김해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