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에 이미 한인 여성들은 세계 평화운동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놀랍지 않나요?”

광복 80주년을 맞아 저평가된 여성의 독립운동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국내외를 넘나들며 여성 독립운동사를 발굴해 알리고 있는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원장을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만났다.

심 원장은 “현재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여성 독립유공자는 664명이다. 2013년 처음 연구할 때 226명에서 몇 배로 늘어난 것”이라면서 “그래도 여전히 묻혀있는 여성 유공자들을 발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옥주 (사)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원장이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국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심 원장이 최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부분은 1919년 설립된 대한여자애국단의 활동이다. 3·1 운동 소식을 전해들은 북미 캘리포니아주에 체류한 한인 부인들이 대한의 독립을 위해 여성들도 뜻을 모아야 한다고 나서 조직한 조직이다. 미국 멕시코 쿠바에 14개 지부를 두고 활동했다. 이들은 조국의 실상을 미국과 세계에 알리는 공식 청원 독립운동을 벌이고 독립의연금을 모금해 동포사회에 전달했다. 심 원장은 “서구의 여성운동이 여성의 인격 확립과 생활 독립을 추구한 참정권 운동을 벌였다면 한국 여성은 자기 해방의 추구를 넘어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구국운동, 국경을 뛰어넘어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평화운동으로 실천됐다”며 “대한민국 여성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할 역사”라고 말했다.

심 원장은 지난 5월에는미국 UC버클리 한국학센터에서 한국 여성독립운동가의 역사를 알리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대한여자애국단의 활동을 소개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제인 윤 재단(이사장 윤행자)’의 후원으로 내년 샌프란시스코에 국내외 통틀어 최초로 한국여자애국단 기념관 설립이 추진될 예정이다.

부산 망미동 출신으로 부산대 국민윤리학과에서 민족운동을 전공한 심 원장은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박사 논문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TV에서 여성 의병장 광고를 보게 됐다. “비녀를 낀 여성 의병장이라니...너무 놀라 3일 뒤에 보따리 싸서 바로 (윤희순 의병장의 활동무대인)강원도 춘천으로 뛰쳐올라갔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구한말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연구로 문학박사를 받았다. 윤희순은 국내 의병 25년, 국외 독립운동 15년 총 40년간 독립운동을 한 여성으로 만주에서 노학당이라는 학교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기도 한 분이라고 심 원장은 소개했다. 또 도산 안창호의 정치철학 연구로 철학박사를 받았는데 도산의 궤적을 따라 국내에서 상해 미주 멕스코 쿠바 등을 따라가다 보니 여성 운동가들의 궤적도 함께 넓혀서 보게 됐다는 것.

2009년엔 국내 최초로 여성독립운동을 연구하는 한국여성독립연구원을 설립해 연구를 이어갔다. “광복 70주년이던 2015년 영화 ‘암살’이 나오고 나서 여성의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다”고 했다. “과거 신사임당 같은 이미지에서 여성이 지붕 위를 날아다니고 총 쏘고 하는 모습으로 확 바뀐 것”이라면서 “영화 나오고 나서 인터뷰 제의가 엄청나게 쏟아졌다”고 말했다.

4년 뒤 2019년 삼일운동 100주년은 큰 전환점이 됐다. 심 원장은 “100년만에 돌아온 이 기회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퇴직금 들고 올라가서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여성독립운동가 포스터 만들어 열심히 알리고 상해 충칭에도 건너가 홍보활동을 했다”고 했다.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회’ 위원으로 청와대에 가서도 발표를 했다. “당시 발표에서 여성 독립운동기념관이 필요하다고 제안해 문재인 대통령도 오케이했는데 이후 코로나 터지면서 무산됐다”고 말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상당수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서훈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윤봉길 의사 부인 배용순 여사, 최운산 장군의 부인 김성녀,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 여사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만주에서 활동한 기록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안성녀 여사 서훈을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심 박사는 이번에 국가보훈처로부터 전문가 의견 요청이 와 “안 여사가 직접 남긴 1차 자료가 없으니 친인척 며느리 등이 남긴 기록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지 고민을 해야 된다. 그리고 여성 독립운동가 인정 기준에 있어서 남성과는 다른 완화된 기준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심 박사는 “제 연구는 이제 시작”이라며 “지난 17년은 여성 독립운동 관련 자료 찾고 확인하며 현장을 뛰어다닌 과정이었다며 지금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간다”고 의욕을 보였다.

심옥주 (사)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원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제인윤 재단 윤행자 이사장과 포즈를 취했다. 윤 이사장은 윤광빈 애국지사의 딸이다. 김정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