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수 (사)한국체육진흥회 이사가 조선통신사가 걸어갔던 옛길을 표시하기 위해 음식점 등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정치색 배제된 민간교류가
- 양국 갈등 푸는 열쇠 될 것
- 총 500명 참여한 걷기대회
- 양산∼부산 200여 명 걸어

- 행사인원 연령대 높은 단점
- 청년문화 교류로 보완해야

"우리는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는 없어요. 한·일 양국 국민이 조선통신사 옛길을 걸으며 서로 감사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굳이 우리가 어떤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겠죠."

지난달 1~20일 '조선통신사 옛길 서울~도쿄 한·일 우정 걷기'를 이끌었던 한남수(63) (사)한국체육진흥회 이사는 이번 행사의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민감한 정치적 문제에 휘둘리지 않는 순수한 민간 교류가 양국 간 갈등을 푸는 열쇠라는 것이다.

한·일 우정걷기는 (사)한국체육진흥회와 (사)일본걷기협회가 조선통신사 파견 400주년이던 2007년 첫 행사를 열어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2년에 한 번 서울 ∼부산 525㎞, 대마도∼도쿄 633㎞를 걷는다. 서울에서 도쿄까지 전 구간을 걷는 본대는 34명이었고, 모두 500여 명이 참여했다. 한국 구간의 마지막 날인 양산~부산 구간에선 200여 명이 참가할 정도로 시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계속되고 있고, 일본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한·일 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일 걷기 일행도 갈등을 겪지 않았을까.

"저도 한국인인데 기분이 좋을 리 있나요. 우리는 걸으면서 이런 이야기는 안 해요.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그런 문제들은 싹 잊게 해주거든요. 한 번은 어떤 할머니가 뭐하냐고 묻더라고요. 의미를 설명해줬더니 좋은 일 한다면서 사탕 사 먹으라고 1만 원을 줘요. 또 일본 사람이 걷다가 다리를 다쳤는데 우리가 통신사 길을 걷는 걸 알고는 무료로 치료를 해줬어요. 마냥 머물 수가 없어 아픈 대로 출발하려는데 다음 마을에 위치한 한의원을 소개해주더군요." 아무런 대가도 없이 민초들이 마음을 주고받는 우호의 장이 1158㎞의 길 위에 펼쳐진 것이다.

이처럼 좋은 취지의 행사가 계속 열려야 마땅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본대 참가자의 평균 나이가 68세의 고령이라는 점이다. "처음 시작할 땐 12번을 걷기로 했어요. 격년제로 열리다 보니 24년이 걸리는데 다들 고령이다 보니 그 횟수도 채우지 못할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길은 영원하지만, 사람은 없어지잖아요. 젊은 피가 수혈돼야 하는데 우리 젊은이들이 옛것에 관심이 없어 아쉽죠."

해서, 한 이사는 새로운 방식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걷기를 넘어 여정 동안 양국의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서로의 문화를 교류할 수 있도록 행사를 확대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도쿄에서 하회탈 춤을 주제로 사진전을 열며 오래전부터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는 데 관심을 둔 한 이사의 기질이 작용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보면서 항상 아쉬운 것이 뿌리를 너무 몰라요. 마이클 잭슨이 누군지는 알아도 할아버지 존함을 모르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일본에 가면 옛 통신사가 전한 우리 문화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양국 젊은이들이 길을 걸으면서 옛 문화를 찾고 현재의 문화를 나누고 이런 식으로 행사를 발전시켜 나가는 게 꿈입니다."

서울 출신인 한 이사는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이벤트 사업을 하다 기획 능력을 인정받아 2005년부터 한국체육진흥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일 우정걷기의 시작부터 참여해 문헌조사와 답사를 병행하며 국내 통신사 옛길을 복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