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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가 윤판기 씨가 광개토왕비 서체로 글씨를 써 보이고 있다. |
"광개토왕비는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표현한 상징체입니다. 부족한 제가 개발한 광개토왕비 서체의 폰트가 우리 문화의 자존심을 일부나마 지켜낸 것 같아 뿌듯합니다."
경남도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윤판기(53·별정 6급) 씨. 그는 경남지역의 중견 서예가다. 그런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광개토왕비 서체 폰트가 내년 1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비석의 글씨체에 담긴 정신이 1600여 년 세월의 벽을 뛰어넘어 대중 곁으로 다가온 셈이다.
폰트는 동일한 모양을 가진 한자 글씨체 4888자 한 벌을 말한다. 반드시 한 벌이 제작돼 있어야 인쇄나 간판글씨, 비문 등의 용도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야욕 속에 개발된 광개토왕비 서체는 한마디로 윤 씨가 흘린 땀방울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광개토왕비 서체는 1775자이지만 온갖 풍상 속에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대부분 마모돼 500여 자만 판독이 가능하다. "숱한 글쓰기를 통해 같은 모양의 글씨체를 되살려 내기 위한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물론 수많은 글씨체의 비문을 연구했죠."
폰트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4800여 자 가운데 4300여 자는 사실상 윤 씨의 창작으로 채워진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붓 가는 대로 쓴' 것이 아님은 그의 이력을 통해 알 수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붓을 잡은 것은 지난 1979년. 이후 국전 특선이나 입선을 무려 13차례나 했다. 경남도청이나 경남경찰청의 표지석은 물론 통영의 해저터널 표지석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건물 이정표나 현판에서 그의 글씨를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그는 "광개토왕비 서체는 (쓰기에) 어렵지 않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는 말로 인연을 설명했다. 따라 쓰기에 쉽다기보다는 글씨 속에 담긴 정신을 사모해서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그가 광개토왕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1993년. 당시 열린 대한민국 서예대전에서 광개토왕비 서체로 작품을 출품해 특선의 영광을 안게 된 것이 계기다.
그는 이 서체를 가리켜 "시골아이처럼 뽐내지 않는 고졸한 멋이 있다"고 담담히 평했다. 그는 올 중반께 서울의 한 폰트개발회사와 손잡고 이 글씨체 초안을 완성했으며 수차례 수정 끝에 내년 1월이면 최종 완성본이 탄생하게 된다.
윤 씨의 서예 작품들은 고향인 경남 의령군 낙서면 곁을 교교히 흐르는 낙동강을 닮았다. 누대에 걸쳐 한순간도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영남의 젖줄이 지닌 넉넉함이 그의 작품세계에 깃들어 있다. 올 초 그가 개발한 한글체 폰트인 물결체도 이 같은 정신세계에 맞닿아 있다.
요즘 그는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모 지역방송사가 운영하는 취미 서예교실에 강사로 나가 교사와 성인들을 대상으로 서예를 가르친다. "여성 제자 한 분이 감사를 표했어요. 글쎄, 남편 생일 선물로 서예형태로 편지를 써 전달했더니 남편이 큰 감동을 받았다지 뭡니까." 순간 그의 주름진 이마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에게 왜 서예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답은 우문현답. "서예는 마음을 닦고 수양하는 데 있어 최고급 예술입니다. 자녀들도 어릴 적부터 서예를 익히게 하면 인내심을 기르고 정신세계도 그만큼 성숙해집니다."
앞으로 그의 꿈은 소박했다.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기고 가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