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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천년약속 정은정 과장이 연구실에서 술을 맛보고 있다. 서순룡 기자 |
"술에 좀 취해 있어야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하고, 말똥말똥하면 일을 안한다고 구박합니다."
(주)천년약속 연구소 정은정(25) 과장은 술을 매일 마셔야 한다. 그의 업무는 시중에 판매되는 '천년약속'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 술맛이 무겁거나 가볍지 않게 사전에 맛을 보고 출시여부를 결정한다.
천년약속이 발효주이기 때문에 희석주와는 달리 발효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져 제품생산 때마다 맛을 감별해야 한다고.
연구실에서 만난 정 과장은 마침 쟁반에 대여섯 개의 술잔을 들고 다니며 술 냄새를 풍겼다. 술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하자 "그래요? 저는 모르겠는데"라며 반문했다. 매일 술과 함께 지내다보니 여간한 술 냄새는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여성으로서는 어찌보면 고역이랄 수 있는 이 일이 그에게는 즐겁기만 한 작업이다.
지난해 APEC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 만찬 건배주로 선정되기도 했던 '천년약속'의 개발자가 정영기(동아대 생명공학과) 교수라면 정 과장은 숨은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정 과장은 동의대 4학년 미생물학과 재학시절 우연히 상황버섯으로 항암제를 개발하려는 정 교수(당시 생명응용과학과) 연구팀에 합류했다. 그후 상황버섯 균사체 배양과정에서 술냄새가 나자 연구팀은 아예 술 개발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 그는 균사체를 배양하며 술맛 결정을 맡았다. 천년약속의 탄생이 그의 입맛에서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과장은 졸업 직후 2003년 회사에 취직했고 요즘도 매일 출고되는 술의 맛을 보고 있다.
"초기에 만든 술은 맛이 다소 들쭉날쭉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 맛을 일정하게 맞출 수 있도록 설비를 체계화했습니다. 그래도 균사체라는 게 아주 민감한 생명체라서 공정과정이 메뉴얼화돼 있더라도 오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차이를 제가 잡아야 합니다."
그런 그에게 '정금이'라는 별명이 자연스럽다. 직업 특성상 술이 셀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술을 마시는 일이 거의 없다. 저녁에 술을 따로 마시면 아침 업무시간에 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 식당에서도 특별대우를 받습니다. 맵고 짠 음식은 빼고 자극이 없는 음식으로 따로 차려주십니다. 떡볶이 된장찌개 이런 음식 못먹어본 지 근 3년이 돼갑니다."
정 과장은 술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공복상태로 출근, 술부터 마신다. 이렇게 매일 5~7잔을 마신다. 회사에서 생산되는 12개 탱크의 술이 그의 입맛을 거쳐야 비로소 세상에 나갈 수 있다.
그의 이 같은 노력이 밑거름이 된 덕분에 2004년 당시 하루 최대 1만 병이 생산되던 술이 현재 8만~10만 병씩 출고되고 있다.
정 과장에게도 남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여자가 술을 만드느냐'는 선입견과 나이가 어리다는 점 때문에 현장 업무에 곤란을 겪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꿋꿋이 극복했고 최근 주임에서 대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과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미각이 남다르다는 말을 듣긴 했습니다만 일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술 개발에 동참했다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제가 만든 맛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없다면 이 일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20대의 풋풋한 열정 속에서 살아있는 프로정신은 스스로가 개척한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