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遊春蘭舸泛桃花·유춘난가범도화
강남에 옛날 대공 같은 처사의 집을 찾아갔는데(江南曾過戴公家·강남증과대공가) / 문 앞 고요한 강은 새벽놀에 깊이 잠겨 있었네.(門對空江浸曉霞·문대공강침효하) / 달빛에 앉아 향기로운 술잔에 죽엽주 기울이고(坐月芳樽傾竹葉·좌월방준경죽엽)/ 봄놀이 나선 목란 배는 복숭아꽃 사이 떠다녔네.(遊春蘭舸泛桃花·유춘난가범도화) / 뜰 앞 이슬 맺힌 연꽃은 붉은빛 섬돌까지 드리우고(庭前露藕紅侵砌·정전로우홍침체) / 창밖 갠 산 푸른빛은 비단 창문 안에 스며들었네.(窓外晴山翠入紗·창외청산취입사) / 옛날 즐겁게 노닐던 일 회상하며 밤마다 꿈꾸노니(徒憶舊遊頻結夢·도억구유빈결몽) / 봄바람 부는 서울(장안)에서 초췌한 신세로 눈물짓네.(東風憔悴泣京華·동풍초췌읍경화)
위 시는 통일신라 시대 문인 최광유(崔匡裕·870?~?)의 시 ‘강남 이 처사의 집을 회상하며’(憶江南李處士居·억강남이처사거)로, ‘동문선’ 권 12에 들어 있다.
그는 885년 10월에 당나라에 파견되어 898년 봄에 신라로 되돌아올 때까지, 약 15살부터 28살까지 13년 동안 당나라에서 숙위학생(宿衛學生) 신분으로 있었다. 그는 885년 당나라가 황소(黃巢)의 난을 완전히 제압한 것을 축하하러 가는 신라사절단에 끼어 당나라로 들어갔다. 최광유가 당나라로 가기 7개월 전인 봄 3월에 최치원은 신라로 돌아왔다.
최광유의 시들은 신라시대 최치원 박인범 최승우의 시와 함께 고려 시대 간행된 ‘십초시(十抄詩)’에 각각 10수씩 실려 있다. ‘동문선’에 실린 최광유의 10수는 ‘십초시’에서 옮겨 실은 것이다.
앞의 여섯 구에서는 이 처사의 집에서 지내던 시절을 그림처럼 펼쳐 보이나 마지막 두 구에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시인은 번화한 서울, 곧 당나라 수도 장안에 머물면서 옛 강남의 풍류를 꿈으로만 되새긴다. 아름다운 과거의 강남과 초췌한 현재 장안 생활이 대비된다.
필자는 그제 조진만(66) 전 국제신문 해양 전문기자가 보낸 복숭아 한 박스를 받았다. 그는 신문사 퇴직 후 부산대 교수로 10년간 재임한 후 경북 의성으로 귀촌해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 힘들게 농사지은 복숭아를 선물 받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최광유의 위 시도 떠올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