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仙菴頻慣客·선암빈관객
지팡이 짚고 그윽한 곳 찾아가니(杖策尋幽處·장책심유처)/ 산허리 밝은 곳으로 시야가 트이네.(山腰眼轉明·산요안전명)/ 깊은 구름 속에 천 봉우리는 멀리 이어지고(深雲千峰遠·심운천봉원)/ 고찰엔 욕심 없는 스님 한 분 고요히 계시네.(古寺一僧淸·고사일승청)/ 햇빛은 들쭉날쭉 비쳐 보이고(日色參差見·일색참차견)/ 종소리는 멀고 가까운 곳에서 울려 퍼지네.(鐘聲近遠生·종성근원생)/ 신선의 암자는 자주 드나들던 익숙한 곳이라(仙菴頻慣客·선암빈관객)/ 차 한 잔 나누는 것 또한 따뜻한 인정이라.(茶椀亦人情·다완역인정)
위 시는 회봉(晦峯) 하겸진(河謙鎭·1870~1946)의 ‘국사암에서(國師庵·국사암)’로, 그의 시문집인 ‘회봉집(晦峯集)’ 권 1에 들어 있다.
하겸진은 30세인 1899년 음력 8월 9~24일 지리산을 산행했다. 산행 경로는 진주-하동옥종-하동횡천-하동읍-악양-쌍계사-국사암-칠불사-불일폭포-내원재-묵계-묵계재-청암면-횡천-양보-옥종-진주이다. 21일 쌍계사에 들른 후 국사암을 찾아 위 시를 읊은 것이다. 그는 종종 국사암을 찾았다고 7행에 적고 있다. 위 시는 산중 유람과 고찰의 고요함, 그리고 인간적 온기를 함께 담고 있다.
진주에서 출생한 하겸진은 하홍도(河弘度) 등 많은 문하생을 배출한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재익(河載翼)이다. 하겸진은 17세에 당대 명유인 허유(許愈)를 만났고, 27세에 곽종석을 직접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29세 때에는 이승희 송준필 등과 교유하였다.
그는 3·1운동이 일어나던 무렵 유림에서 파리강화회의에 우리나라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영남 유림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서명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하겸진은 현재 진주시 수곡면의 덕곡서당(德谷書堂)에 배향되어 있다.
필자는 아침이면 목압서사 위쪽에 있는 국사암을 자주 찾는다. 통일신라 시대 진감국사가 수행하셨던 국사암에 가면 위 시에 표현된 것처럼 ‘선암(仙菴)’의 분위기를 느낀다. 스님들의 대학원 과정인 율원(律院)이어서 더 고요하다. 오늘 아침에도 천천히 걸어 국사암에 들러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이 암자에서 필자의 집을 거쳐 칠불사로 간 하겸진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