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山與性寂 谷與梵應·산여성적 곡여범응
그윽하고 빼어난 곳 골라 바위 비탈에 절 짓고(尋幽選勝 卜築巖磴·심유선승 복축암등)/ 계곡물과 달로 마음 맑히고 구름과 샘물로 감흥 표현했네.(水月澄懷 雲泉寄興·수월징회 운천기흥)/ 산은 본성 따라 고요하고 골짜기는 범패 울리니(山與性寂 谷與梵應·산여성적 곡여범응)/ 닿는 곳에 걸림 없고 꾸밈(機) 끊어 깨달았도다.(觸境無硋 息機是證·촉경무애 식기시증)
위 글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이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 경내에 세운 진감선사비(眞鑑禪師碑)의 마지막에 있는 명(銘) 중 한 부분이다. 진감선사비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최치원이 왕명을 받들어 887년(진성여왕 1) 7월 세웠다. 비문의 글씨는 최치원이 쓰고 승려 환영(奐榮)이 글자를 새겼다. 진감선사비문은 최치원이 세운 사산비명(四山碑銘) 중 하나이다. 그는 868년(경문왕 8) 당나라에 들어가 885년(헌강왕 11) 3월 귀국하여 왕실이 주관하는 불사의 발원문과 찬을 작성하였다.
비문의 주인공인 진감선사(774~850) 혜소(慧昭)는 통일신라 애장왕 5년(804년)에 당나라로 가 흥덕왕 5년(830년)에 귀국하였다. 문성왕 12년(850) 쌍계사에서 77세로 열반하였다.
첫 구는 진감선사가 중국 당나라 여러 절에서 20여 년간 공부를 한 후 귀국하여 경북 상주 노악산의 장백사에 주석하였다가 하동군 화개골짜기의 빼어난 곳에 삼법 화상이 지내던 사찰 터에 다시 옥천사(玉泉寺·후일 쌍계사로 개칭)를 지었다는 말이다.
838년에 민애왕이 그에게 혜소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셋째 구의 ‘범패’(梵唄)는 석가여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를 말한다. 진감선사가 당나라에서 그 노래를 들여와 옥천사(쌍계사)가 불교 음악의 진원이 되었음을 말한다. 넷째 구의 ‘기(機)’는 무엇인가를 꾸미고 의도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4, 5년 전에 필자가 운영하는 서당인 목압서사에서 학인들을 대상으로 진감선사비문을 강독한 적이 있다. 이미 해석과 해설을 해놓은 상태여서 단행본으로 발간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게을러 이제야 겨우 책을 낸다고 교정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