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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518> 나뭇잎 떨어지는 늦가을에 읊은 읍취헌 박은의 시

근심 걱정은 떨쳐 버려야 진정 초탈한 선비일진대(撥棄憂懷眞達士·발기우회진달사)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  |   입력 : 2025-11-11 18:26:30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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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가을 낙엽 떨어져 문으로 들어오는데(深秋木落葉侵關·심추목낙엽침관)/ 창문은 한쪽의 산 온통 실어 들이네.(戶牖全輸一面山·호유전수일면산)/ 설령 술과 잔이 있더라도 누구와 마주하고 마시랴?(縱有盃尊誰共對·종유배준수공대) / 비바람이 추위 재촉할까 벌써 걱정 되네.(已愁風雨欲催寒·이수풍우욕최한) / 하늘이 응당 내게 궁한 팔자 내려 주었으니(天應於我賦窮相·천응어아부궁상) / 국화까지도 나에게 기쁜 모습 보이지 않으니(菊亦與人無好顔·국역여인무호안)/ 근심 걱정은 떨쳐 버려야 진정 초탈한 선비일진대(撥棄憂懷眞達士·발기우회진달사)/ 병든 눈에 부질없이 눈물 흘리게 하지 말게나.(莫敎病眼謾長潸·막교병안만장산)

위 시는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1479~1504)이 지은 ‘벗인 택지 이행(李荇)의 시에 다시 답하다’(再和擇之·재화택지)로, 그의 문집인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권 3에 실려 있다.

위 시는 쓸쓸한 늦가을 모습과 작자의 처지를 시에 이입하여 비감(悲感)을 더하고 있다.

박은의 집에는 늦가을 강한 바람에 낙엽이 마당으로 쓸려온다. 답답하여 술을 마시고 싶으나 벗(이행)이 눈병이 나 함께할 수도 없다. 근심 걱정 털어버리자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 홍문관 수찬으로 재직 중이던 박은이 1501년(연산군 7) 연산군에게 빌붙은 권세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파직돼 집에 은둔하고 있을 때 위 시를 읊었다.

‘擇之(택지)’는 이행(李荇·1478~1534)의 자(字)이다. 이행이 먼저 세상을 버린 벗 박은을 그리워하며 시를 읊은 내용은 본 연재 제310회에 소개돼 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박은은 뜻을 굽히지 않다가 효수(梟首)되었다. 그의 나이 26세 때였다.

필자는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 앞에 숙소를 정해놓고 지난 9~11일 2박 3일간 답사를 다녔다. 추사 김정희 묘소에 들러 절을 올린 후 고택을 둘러보다 담장의 기와 위로 가지가 뻗어있는 단풍잎을 보았다.

아름다운 빨간색이 되레 가슴을 저몄다. 그러면서 그때 죽지 않고 살았으면 나라에 큰 보탬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박은이 늦가을에 쓴 위 시와 그의 짧은 생애가 오버랩되어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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