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서당을 진즉 알고 일찍 와보니(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방에는 모두 존귀한 분들만 있네.(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학생들은 모두 열 명이 못 되는데(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선생은 와 보지도 않는구나.(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위 시는 김삿갓(본명 김병연·1807~1863)의 ‘어느 서당을 욕함’(辱說某書堂·욕설모서당)으로, ‘김삿갓 풍자 전집’(실천문학사·2000)에 실려 있다. 첫 행의 ‘乃(내)’ 대신 ‘來(래)’로 표기된 곳도 있다.
학생이 10명이 되지 못하는 서당인데, 아이들의 태도가 불손했다. 아마 어른인 김삿갓이 훈장 선생님을 찾았어도 학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훈장 선생님은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김삿갓은 아마 서당이라면 밥을 내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찾았던 것이리라.
훈장 선생님은 김삿갓의 명성과 그를 대하면 실력이 모자라 창피당할 걸 알고 일부러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김삿갓이 위 시를 지었다면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한시의 음을 읽으면 큰 욕이 된다. 그만큼 화가 많이 났다는 뜻이리라.
알다시피 무인 벼슬을 하던 그의 조부 김익순(金益順)이 홍경래의 난 때 항복했다. 김익순은 참형당하고 대신 가족은 무사하였지만 멸문지화 집안이 되어 자손은 출셋길이 막혀버렸다. 그런 까닭인지 그는 스무 살에 혼인한 후 집을 떠나 방랑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방랑 구간은 함경북도 길주·명천에서 제주도까지 걸쳐있다.
경기도 양주 회암사 인근 회암동에서 태어난 김삿갓은 전국을 방랑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56세 때 집처럼 드나들던 전남 화순 동복면 구암마을 창원 정씨(丁氏) 집에서 세상을 버렸다. 구암마을에 묻혔다가 3년 후 둘째아들이 자기 집 근처인 강원도 영월로 이장했다.
경성제국대학 출신인 이응수(李應洙 1909~1964) 씨가 대학생 때부터 김삿갓의 시를 수집해 1939년 ‘김립시집’(유길서점)을 출판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31일 필자는 전남 화순 동북면 구암마을 ‘삿갓 문학동산’과 그가 숨을 거둔 창원 정씨 댁을 찾았다. 그가 묻혔던 이 마을 초분지도 둘러보았다. 방문객이 별로 없는지 문학동산과 정씨 댁에 잡초가 무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