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浪蘂浮花不是才·낭예부화불시재
붉은 꽃 한창일 때 흰 꽃 반 쯤 피고(紅爛開時白半開·홍란개시백반개)/ 쟁반보다 크고 술잔보다 작기도 하네.(大於盤面小於不·대어반면소어불)/ 시내에 뿌리 두고 해를 향해 기우는 모양 아름다우니(憐渠本有傾陽懇·연거본유경양간)/ 일반 꽃들과는 그 자질이 다르다네.(浪蘂浮花不是才·낭예부화불시재)
위 시는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접시꽃’(葵花·규화)으로 그의 문집인 ‘사가집(四佳集)’ 권28에 들어있다. 요즘 접시꽃이 한창 피어난다. 서거정이 접시꽃 모양과 특성 등을 잘 짚은 작품이다.
접시꽃은 붉은색·분홍색·흰색 등 색상이 다양하다. 첫 구를 보면 접시꽃 색에 대해 묘사한다. 붉은 꽃이 흰색보다 빨리 피는 것으로 읊었다. 관찰력이 예리하다. 둘째 구에서는 크기에 관해 읊었다. 어떤 것은 쟁반보다 크고, 어떤 것은 술잔보다 작다. 접시꽃 종류나 햇볕을 받는 위치 등에 따라서도 꽃잎 크기가 다를 수 있다. 셋째 구에서는 접시꽃 속성을 읊는다. 해를 따라다니며 피는 특성을 그렸다. 이런 특성은 임금을 향한 충성심을 뜻한다. 그리하여 흔히 신하의 그런 마음을 ‘규심(葵心)’이라 한다. 결구인 넷째 구에서는 그 자질에 대해 읊었다.
당나라 시인 잠삼(岑參·715~770)은 시 ‘촉규화가(蜀葵花歌)’에서 “어제 한 송이 피었고(昨日一花開·작일일화개)/ 오늘 한 송이 또 피네.(今日一花開·금일일화개)/ 오늘 꽃 참 좋으니(今日花正好·금일화정호)/ 어제 꽃 이미 시들었네.(昨日花已老·작일화이로)”라고 읊었다. 접시꽃이 오래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송이 한 송이 짧게 피었다가 금방 떨어지고 새 꽃이 피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잠삼은 접시꽃의 이러한 꽃 핌에 대해 읊었다.
마을 곳곳에 여러 색상의 접시꽃이 피어 있다. 모내기를 마친 논두렁에도 접시꽃 핀 걸 보았다. 필자의 한 친구는 접시꽃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가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 시집을 읽고 감명받아 집 주변에 접시꽃을 여럿 심었다고 했다. 필자는 가녀린 꽃대에 쉼 없이 꽃을 피우는 접시꽃을 볼 때마다 예쁘기도 하지만 애처롭기도 하다. 접시꽃과 속성이 비슷하지만 꽃 모양이 전혀 다른 해바라기는 흔히 ‘황촉규(黃蜀葵)’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