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흰 구름 속에 묻혀 있는데(山在白雲中·산재백운중)/ 흰 구름을 스님은 쓸지도 않네.(白雲僧不掃·백운승불소)/ 길손이 오니 문 비로소 열리는데(客來門始開·객래문시개)/ 온 골짜기에 송화꽃이 시들고 있네.(萬壑松花老·만학송화로)
위 시는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의 ‘佛日菴 贈因雲釋 ’(불일암 증인운석·불일암 인운 스님께 드리다)로, 그의 문집인 ‘손곡시집(蓀谷詩集)’권5에 있다.
한국문집총간 제61권에 있는 ‘손곡시집’에는 제1구가 ‘山在白雲中’으로 돼 있어 이를 따랐다. 항간에는 ‘山’이 ‘寺’로 읽히기도 한다. 불일암은 하동 쌍계사 뒤쪽 불일폭포 위에 있다. 이달은 위 시와 같은 시제로 5언 율시도 지었다.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지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일폭포가 있는 인근은 예부터 청학동(靑鶴洞)으로 불리던 곳으로, 절벽이어서 접근하기가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나무데크로 연결돼 있으나, 바위산을 깎은 잔도(棧道)를 거쳐야 하는 등 여전히 쉬운 구간은 아니다.
첫 구를 보면 불일암이 있는 산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다. 속세와 단절됐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스님은 구름을 쓸려고 하지도 않는다. 스님은 참선을 통해 도를 구하는 구도자이다. 굳이 ‘구름’을 쓸어 없애려 하지 않는다. 구름이 ‘번뇌’를 상징할 수도 있다. 스님은 번뇌 속에서 깨달음을 구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문이 늘 닫혀있다. 스님은 방안에서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참선 수행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길손이 오자 문을 열었다. 결구인 넷째 구에서는 ‘송화꽃이 시들고 있네’라며 시간이 망각된 공간임을 표현한다. 시간 흐름을 초월한 채 구도에 전념하는 탈속(脫俗) 경지를 묘사한다. 제2, 4구 ‘소(掃)·노(老)’가 압운을 나타내는 운자(韻字)이다.
엊그제 불일폭포에 갔다 왔다. 이전에는 목압서사가 있는 목압마을 위쪽 국사암을 통해 불일폭포에 다녀왔다. 지금은 국사암 올라가는 곳에 울타리를 쳐 일반인 출입을 막고 있다. 쌍계사를 통해 폭포까지 다녀왔는데, 겨우 한 두 사람 만났다. 불일암은 여전히 방문이 닫혀 있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