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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70> 독서하는 데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금대 이가환

모든 곳이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다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4-05-07 19:28:54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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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독서하는 사람은 있지만 독서하는 장소라는 것은 없다. 진정으로 독서를 하고자 한다면 쓰러져가는 초가집이나 부뚜막 위, 망가진 담요 위 모든 곳이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書林)이다.

天下有讀書人, 無讀書處. 苟欲讀書, 蓬屋土銼, 壞床敗薦, 悉書林也. (천하유독서인, 무독서처. 구욕독서, 봉옥토좌, 괴상패천, 실서림야.)

위 글은 금대(錦帶) 이가환(李家煥·1742~1801)의 ‘독서하는 장소에 관한 글(讀書處記·독서처기)’로, 그의 시문집 ‘금대시문초(錦帶詩文鈔)’ 하(下)에 있다. 위 글은 전체 글의 첫 부분에 있는 일부이다.

이가환은 영조~정조 대에 성균관 대사성·대사간·공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이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심문을 받다가 죽었다. 할아버지 이침이 성호 이익과 형제 사이다. 이가환 집안은 남인 명문가였다. 이가환은 18세기 북경에서 그라몽(Gramont·梁東材) 신부에게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한국 교회 최초 영세자인 이승훈 및 정약종·홍낙민 등과 함께 체포됐다. 이승훈은 그해 4월 8일 서대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었다.

이가환은 정조가 즉위한 1777년 문과 시험에서 급제한 뒤 이듬해 문신 제술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할 정도였으니 독서를 많이 하였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가환의 지인인 조대구(趙待求)가 아들인 길증(吉曾)을 위해 독서하는 집을 따로 만들어주었다. 이에 이가환이 무릇 독서인이라면 장소에 구애받음 없이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자 위 글을 썼다. 그러면서 독서(공부)를 하지 않을 자식은 아무리 좋은 공간을 만들어줘도 독서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어제 카페에서 책을 읽는 중에 옆에 젊은 엄마 두 명이 각자 아이를 데려와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도록 했다. 한 아이는 공부를 하였지만 다른 아이는 “이런 데서 공부하기 싫어”라고 했다. 필자는 “공부할 놈은 단칸방에 살고 책상이 없어도 사과궤짝에 책을 펼쳐놓고 공부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아직 그 아이가 어려 그렇지만 조금 더 크면 이가환의 말대로 어디서나 책을 펼쳐 읽는 독서인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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