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懷佳人兮不能忘·회가인혜불능망

… /태평시대는 멀어졌으니 슬픔 어찌 다하겠는가?(羲軒遠矣悲何極·희헌원의비하극)/ 요순(堯舜) 임금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절로 상하네.(華勳不見心自傷·화훈불견심자상)/ 입 속으로 읊조리다가 붓을 대니 천지는 넓은데(沈吟筆下乾坤闊·침음필하건곤활)/ 술동이 앞에서 마음껏 취하니 세월은 길구나.(爛醉樽前日月長·난취준전일월장)/ 아아! 노쇠했나니 늦게 태어난 게 괴로운데(嗟哉潦倒生苦晩·차재료도생고만)/ 마음에 둔 훌륭한 님을 잊을 수가 없구나.(懷佳人兮不能忘·회가인혜불능망)

위 시는 어계(漁溪) 조려(趙旅·1420~1489)의 ‘구월구일 중구일에 높은 곳에 올라’(九日登高·구일등고) 뒷부분으로, 그의 문집인 ‘어계집(漁溪集)’ 권1에 들어 있다. 단종(재위 1452~1455)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단종을 위해 수절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조려는 단종 즉위 해인 1553년 진사시에 급제한 뒤 성균관에서 대과 공부를 하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공부를 접고 고향 함안으로 돌아와 은거하며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그래서인지 영월에 가면 ‘어계비원(漁溪碑苑)’이라는 비석과 그의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사적비에는 그를 칭하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큰 글귀가 새겨져 있다. 백세청풍은 올곧은 선비에게 붙여지는 별호이다.

조려의 조부로, 고려 공민왕 때 공조전서였던 금은(琴隱) 조열(趙悅)이 조선왕조의 밥을 먹을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함안으로 은거함으로써 절의를 지켰다. 또 어계가 생육신의 절의를 지킨 이래 문성(門聲)이 더욱 널리 퍼졌다. 정유재란 때 대소헌 조종도가 순절했고, 충절 13명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해 조려 집안은 학문과 충절로 이름 높았다. 허권수 경상국립대 명예교수는 논문 ‘함안 조씨의 함안 정착과 대소헌(大笑軒) 가문’에서 “함안 조씨 가문의 가장 큰 특징은, 학자와 충절이 많다는 것이다”고 했다.

어제 오전 동생이 운영하는 카페에 잠시 있었다. 차를 마시러 오신 어르신 네 분이 “강원도에 여행 갔다가 청령포 들러 화개로 왔다”고 하셨다. 어르신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눈 내용 중 이런 것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