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繁紅數朶斬新開·번홍수타참신개

눈에 눌린 소나무 대나무 부러질 듯한데(雪壓松筠也欲摧·설압송균야욕최)/선홍빛 몇 송이 꽃 새로 피었네.(繁紅數朶斬新開·번홍수타참신개)/ 산속 사립문은 적막하고 찾는 사람도 없는데(山扉寂寂無人到·산비적적무인도)/ 때때로 이름 모를 새가 몰래 와 쪼아 먹네.(時有幽禽暗啄來·시유유금암탁래)

위 시는 조선 광해군·인조 때 문신인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38)의 ‘눈 속의 산다화(雪裏山茶·설리산다)’로, 그의 문집인 ‘계곡집(谿谷集)’ 권33에 들어있다.

대개의 사람은 산다(山茶)를 동백(冬栢)으로 생각한다. 산다와 동백이 비슷하게 생겨 구분하기 쉽지 않아 통틀어 동백으로 부른다. 동백보다는 늦게까지 꽃이 피어 늦동백이라고 하며, 꽃이 동백보다 조금 작다고 하여 애기동백이라고 하기도 한다. 여하튼 장유가 위 시에서 ‘동백’이라 하지 않고 ‘산다’라고 한 것은 그가 동백과 산다를 구분할 줄 알았기 때문이리라. 하얀 눈 속에 빨갛게 핀 산다화를 보고 시인은 겨울의 삭막함을 씻어줄 풍경으로 보았다. 시인은 소나무와 대나무도 이기지 못하는 눈 속에서 선홍빛 꽃송이를 피운 산다화를 칭송한다.

눈이 많이 내리면 그 무게를 못 견딘 소나무 가지가 부러져 있는 걸 우리는 가끔 보아왔다. 필자와 가끔 만나 밥을 먹는 지리산 청학동의 휴암(休岩) 양영욱(63) 선생이 집 뒤 대밭 쪽 멋진 소나무의 큰 가지가 눈에 눌려 부러진 것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함께 올라가 보니 과연 소나무 가지가 부러져 땅에 떨어져 있었다. 필자 역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위 시에서 이처럼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사는 장유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사립문이 적막하다. 이따금 새들이 찾아와 산다화를 쪼아 먹을 뿐이다.

굳이 동백과 산다를 구분하자면 동백꽃은 원통 모양으로 입체적으로 두껍지만 산다화는 꽃이 평면적이고 얇다. 동백꽃은 질 때 꽃송이 전체가 툭 떨어지지만 산다화는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진다. 한시를 읽다 보면 동백꽃과 산다화를 구분하는 시인이 아주 드물게 보인다. 필자는 손님과 함께 화개골 한 밥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 밥집 입구에 자그맣게 핀 산다화를 보곤 예뻐 잎을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