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00> 지루한 장맛비 속에서 서늘한 가을이 온다고 읊은 변계량

가을이 지루한 장맛비 속에 생겨나네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  |   입력 : 2023-08-27 19:30:28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秋生積雨中·추생적우중

새벽녘 서늘함 대자리에 들어오고(殘夜涼侵簟·잔야량침점)/ 창문이 비어 이슬 기운 스며드네.(窓虛露氣通·창허노기통)/ 사방의 이웃에 등불은 밝고(四鄰明宿火·사린명숙화)/ 고을 집집마다 새벽종 울려대네.(萬井動晨鍾·만정동신종)/ 엷은 새벽안개 너머 해 뜨고(日出疎煙外·일출소연외)/ 가을이 지루한 장맛비 속에 생겨나네.(秋生積雨中·추생적우중)/ 깊은 곳 살아 세수와 빗질 잊고 지내는데(幽棲忘盥櫛·유서망관즐)/ 손님 찾아오니 마지못해 단장했네.(客至强爲容·객지강위용)

위 시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1369~1430)의 ‘晨興’(신흥·새벽에 일어나)으로, 그의 문집인 ‘춘정집(春亭集)’에 수록돼 있다.

변계량은 계속되는 장맛비 끝에 가을이 찾아오고 있음을 읊고 있다.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 새벽녘엔 대자리가 서늘하다. 그가 사는 집은 골짜기 그윽한 곳에 있다. 평소엔 세면도 않고 살고 있다. 그런데 손님이 방문하니 어쩔 수 없이 용모를 단정히 하였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아열대 지방의 스콜처럼 퍼붓다가 그치기를 반복한다. 엊그제 밤에 비가 너무 내려 ‘화개장터 일대가 3년 전처럼 또 물에 잠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였다.

어제 이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을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전날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 필자는 목압마을의 물 관리인이다. 부리나케 산으로 올라갔다. 진감선사가 수도하셨던 국사암 앞을 지나 삼신봉 방향으로 올라갔다. 길이 거의 없는데다 대숲으로 우거져 어둑하다. 마을 뒤 산에 멧돼지가 많다. 요즘엔 곰이 돌아다닌다고 마을 할머니들이 혼자 가지 마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지팡이로 바위를 치면서 아는 노래는 다 부르고 올라갔다. 지리산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이지 않은가.

취수원의 시설이 좀 원시적이다. 비가 퍼부었으니 낙엽이 많이도 씻겨 내려와 있었다. 선선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곰이 나타날까봐 두리번거리며 일을 했다. 내려올 때는 곰이 뒤에서 쫓아올까봐 뛰다시피 했다. 그러는 와중에 변계량의 위 시가 떠오른 것이었다. “가을이 지루한 장맛비 속에 생겨나네(秋生積雨中)”라는 시구를 평소 좋아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246회 로또 1등 16명…당첨금 각 18억 8,103만 원씩
  2. 2"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3. 3‘부산살이’ 한 달 된 부캉이…주말 북항 친수공원 인파 몰려
  4. 4통영서 단체 수영하던 50대, 1.8㎞ 표류…해경 구조
  5. 5[속보] 재커라이어, 나흘 만에 경질.. ‘역대 최단 기간’ 백악관 대변인
  6. 6[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7. 7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8. 8[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9. 9제자 성추행한 초등 교사에 기부금 전달한 전현직 교사 '불구속 송치'
  10. 10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1. 1李대통령, 부천 화재 순직 소방관 조문…“영원히 기억할 것”
  2. 2[속보] 추미애 '소방 재정 빨대' 발언 사과…“폄훼 의도 없어”
  3. 3국힘, 秋 ‘재정 빨대’ 발언 사과에 “‘사과 바라시니까’…끝까지 오만”
  4. 4김민석, '재정 빨대' 발언 사과... "추미애에게도 사과 요청했다"
  5. 5[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6. 6[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7. 7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 (종합)
  8. 8이헌승 "국제신문 실질적 대주주 조사 미흡" 질타에 부산노동청장 "다음주 면담"
  9. 9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10. 10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1. 11246회 로또 1등 16명…당첨금 각 18억 8,103만 원씩
  2. 2"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3. 3"통합 앞둔 발전5사, '8020억 자회사 부채' 승계계획 전무"
  4. 4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1.2원 ↓
  5. 5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6. 6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7. 7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8. 8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9. 9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10. 10‘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1. 1‘부산살이’ 한 달 된 부캉이…주말 북항 친수공원 인파 몰려
  2. 2통영서 단체 수영하던 50대, 1.8㎞ 표류…해경 구조
  3. 3[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4. 4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5. 5[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6. 6제자 성추행한 초등 교사에 기부금 전달한 전현직 교사 '불구속 송치'
  7. 7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8. 8광주서 승합차·시내버스·오토바이 추돌…2명 경상
  9. 9"뉴스거리 만들려 범행" 인천 흉기난동범 최충락 주거지 압수수색
  10. 10이태원 참사 유족, 4주기 앞두고 진상규명 촉구…"책임자 처벌" 외치기도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