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且將樽酒欲爲迷·차장준주욕위미
평생 문틈으로 흰 구름만 보다가(平生唯見白雲扉·평생유견백운비)/ 내가 남주에 사는 한 명의 포의임을 알았네.(知是南州一布衣·지시남주일포의)/ 날은 저물고 날씨 차가운데 돌아갈 길 머니(日暮寒天歸路遠·일모한천귀로원)/ 장차 술 단지 들고 취하며 헤매고 싶네.(且將樽酒欲爲迷·차장준주욕위미)
위 시는 조선 시대 17~18세기에 활동한 여성시인 호연재 김씨(浩然齋 金氏·1681~1722)의 ‘생애(生涯)’로 ‘한국여성시문전집’2권에 수록돼 있다.
평생을 집안에서 집 밖의 흰 구름만 보고 살았는데, 여기 남쪽 땅인 남주에 한 명의 포의 선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자신을 일컫는다. 벼슬은 하지 않지만 뜻이 큰 포의임을 깨닫는다. 날이 저물고 춥지만 멀리까지 나와 돌아갈 길도 막막해 그냥 술 단지의 술을 마시겠다며 토로한다. 여성이라는 운명을 원망하며 술에 취해 잠들고자 한다. 그녀는 탕탕한 군자의 성품을 품은 여성 시인으로도 평가받는다. 호연재는 허난설헌보다 많은 240여 수의 시를 남겼다.
친가와 시가 모두 명문가이다. 친정은 안동 김문(安東 金門)으로 고조부는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국한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이고, 부친 김성달(金盛達)은 고성군수를 역임했다. 시가는 은진 송문(恩津 宋門)으로 문묘에 배향된 동춘당(東春堂) 송준길(宋浚吉)이 시증조부이다. 시조부 송광식(宋光栻)은 우암 송시열의 문인으로 이조참판이었고, 시부 송병하도 우암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수원부사·의주부윤 등을 지냈다.
19세인 1699년 10월 16일 소대헌(小大軒) 송요화(宋堯和·1682~1764)와 결혼했다. 송요화는 자(字)가 춘유(春囿)로 지중추부사를 지냈으며,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의 문하이다. 대전 대덕구에 소대헌·호연재 고택이 있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학자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 송병하가 1674년(현종 15) 분가하여 건립한 가옥으로, 송병하의 아들 송요화가 1714년(숙종 40)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
대전에 사는 필자의 오랜 벗인 한 시인이 오랜만에 안부전화를 했다. 소대헌·호연재 고택에 들렀다가 갑자기 필자가 생각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