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을 둘러 흙으로 계단을 만들고 그 바깥에 울타리를 쳐, 그 사이에 갖가지 화초를 심었는데 좌우에 형형색색으로 만발해 있었다. 어떤 것은 군자의 맑은 정신을 닮았고, 어떤 것은 미녀의 요염한 모습 같았으며, 어떤 것은 부귀한 자의 화려함을 닮았고, 어떤 것은 은자의 고독한 형상 같았다.
回山麓, 築土階, 籬于其外, 雜植花草于其間, 形形色色, 紛披左右, 或如君子之淸淑, 或如美人之妖艶, 或如富貴者之華麗, 或如隱逸者之幽獨.(회산록, 축토계, 이우기외, 잡식화초우기간, 형형색색, 분피좌우, 혹여군자지청숙, 혹여미인지요염, 혹여부귀자지화려, 혹여은일자지유독.)
위 문장은 나재(懶齋) 채수(蔡壽·1449~1515)의 수필 ‘꽃을 키우는 집(養花軒·양화헌)’의 부분으로, 그의 문집인 ‘나재집(懶齋集)’ 권1에 들어있다. 1482년 8월 사헌부 대사헌으로 있던 채수가 성종의 비(妃)였다가 폐위된, 연산군의 생모 윤씨(尹氏)를 위해 글을 올린 일로 해직돼 고향인 경상도 함창(현 상주)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때 벗인 취수옹(醉睡翁) 이겸(李謙·생몰년 미상)이 같은 고을에서 꽃을 키우며 유유자적했다. 위 글은 채수가 이겸의 집을 찾아 꽃을 보고 썼다. 군자와 닮은 연꽃, 미녀의 요염한 외모를 닮은 복숭아꽃, 부귀한 자의 화려한 모습은 모란이었다.
화개십리벚꽃 축제는 어제 끝났다. 지난달 31일 저녁 목압서사에서 ‘3월 인문학 초청특강’이 열렸다. 강사는 전남 강진 백운동에서 차를 만들며, 이한영차문화원장을 맡고 있는 이현정 박사였다. 그녀는 일제강점기 애국운동의 일환으로 ‘백운옥판차(白雲玉板茶)’라는 상표등록을 해 우리 차를 지킨 이한영(1868~1956)의 직계 후손이다. 강의 주제는 ‘다산이 그리워한 백운옥판차’였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귀양살이 할 때 월출산 아래 백운동별서정원에 살던 제자 이시헌에게 차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다. 이시헌은 스승이 해배돼 경기도 남양주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 차를 보내드렸다. 이시헌은 물론 그의 후손은 100여 년 동안 다산 가문에 차를 보냈다. 백운옥판차를 만든 이한영은 이시헌의 후손이다. 이날 보니 이현정 박사도 꽃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