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나라의 소열 황제가 죽음에 임박해 후주에게 조칙을 내려서 말하였다. ‘선(善)이 작다 하여 아니하지 말며, 악(惡)이 작다 하여 해서는 안 된다.”
漢昭烈 將終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한소열 장종 칙후주왈 물이선소이불위 물이악소이위지)
위 문장은 ‘명심보감(明心寶鑑)’ 계선편(繼善篇)에 나온다. 서당의 어린 학생(동몽)들에게 나쁜 짓은 해서는 안 되고,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문장이다. 알다시피 ‘명심보감’은 고려 시대 때 동몽들의 학습을 위하여 고전에 나온 선현의 금언(金言)·명구를 편집하여 만든 책이다. 원문 속 한소열(漢昭烈)은 관우·장비와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맺은 유비(劉備·161~223)를 일컫는다. 그의 시호가 소열황제(昭烈皇帝)이다. 유비는 전한(前漢)의 6대 황제 경제(景帝)의 아들인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기원전 113)의 후손이다.
서기 220년 조조의 아들인 조비(曹丕)가 중국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의 양위를 받아 위(魏)의 황제가 되자, 221년 유비도 한(漢)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촉한(蜀漢)을 세웠다. 이듬해 장비가 부하인 범강과 장달에게 살해되어 이들이 장비의 목을 가지고 오나라로 달아나자 유비는 형주 탈환과 관우·장비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 손권을 공격하였다. 관우는 아들인 관평(關平)과 함께 손권의 군대에 붙잡혀 219년 참수되었다. 하지만 유비는 이릉(夷陵) 싸움에서 오나라에 대패하여 백제성(白帝城)에서 제갈량에게 후사를 위탁하고, 223년 4월 63세로 병사했다. 후주(後主)는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이다. 유선은 촉한의 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다.
필자가 대학에 근무할 때 대학원장을 지내신 이동춘 교수께서 최근 자신이 편(編)한 ‘명심보감강설(明心寶鑑講說)’을 지리산 화개골 목압서사로 보내셨다. 퇴직 후 10여 년 경전 공부를 하셨단다. 우연의 일치인지 마침 목압서사 산하의 목압고서박물관에서 ‘조선 시대 서당의 교재들’ 주제로 제7차 기획전을 오는 9월 30일까지 열고 있다. 월요일마다 여는 인문학특강에서도 ‘명심보감’을 읽고 있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