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 적부터 책 보는 것을 좋아했고, 또 책을 베끼는 고질병을 갖고 있다. … 또 종이가 비싸서 파리 대가리처럼 작은 글씨로 작게 베낀 글을 모아 놓았다. … 게다가 나 같은 사람은 본디 가난한 탓에 풍부한 장서를 소장하는 데에는 생각이 미칠 수 없다. … 우리 집에는 역대의 시를 뽑은 책이 많이 있는데 모두 선친께서 젊을 때 직접 베끼신 책자이다. 증조부께서 베끼신 ‘방옹집(放翁集)’과 조부께서 베끼신 ‘전목재집(錢牧齋集)’ 한 권은 우리들이 지금까지 보물로 감상하여 시 공부에 상당한 보탬이 되었다…."
余兒時喜看書, 而又癖於抄書(여아시희간서 이우벽어초서). … 又因紙貴 以蠅頭字細細抄集(우인지귀 이승두자세세초집). … 且吾輩素貧 富於藏書 非所議到(차오배소빈 부어장서 비소의도). … 吾家多有歷代詩抄 皆是先君少時手抄之書(오가다유역대시초 개시선군소시수초지서). 而曾王考所抄放翁集及祖考所抄錢牧齋集一卷 小子輩至今寶玩 其於詩學頗有資益焉(이증왕고소초방옹집급조고소초전목재집일권 소자배지금보완 기어시학파유자익언) ….
위 글은 유본예(柳本藝·1777~1842)의 산문 ‘서초설(書抄說)’, 즉 ‘글을 베끼는 이야기’로 그의 필사본 ‘수헌집(樹軒集)’에 수록돼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일반적인 공부 방법을 묘사한 것이 이 글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책의 가격이 워낙 비싸 직접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대개 다른 사람이 소장한 책을 빌려 베껴 공부를 하였다.
유본예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그는 정조 시대의 유명한 문인인 유득공(柳得恭)의 둘째 아들이다. 유본예 또한 정조 말엽부터 20여 년간 규장각 검서관으로 봉직한 문사이다. 그런 그도 그러했으니, 돈도 없는 데다 벼슬도 하지 않은 선비들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때는 벼슬이 상당히 높거나, 큰 문중에 속하거나, 돈이 많은 후손 또는 제자들의 후원을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문집을 내기 힘들었다.
필자의 집에 내려오는 고서 가운데서도 이런 필사본이 많다. 할아버지들이 깨알 같은 글씨로 한 자 한 자 적어 묶은 책들을 보노라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