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而勤一世必往求賢人君子 以爲師友·이근일세필왕구현인군자 이위사우
“남북으로 만 리가 넘는 곳도 마다 않고 평생 부지런히 현인과 군자를 찾아서 스승이나 벗으로 삼으려 하면서도 찾지 못할까 전전긍긍했다. 행동과 음식, 기호를 알아내고자 멀더라도 찾아갔다. 이유가 어찌 다른 데 있겠는가? 오로지 절차탁마하여 자신의 도를 크게 이루고자 이렇게 부지런히 사모하고 좋아했던 것이다.”
南北不知萬有餘里 而勤一世必往求賢人君子 以爲師友 如不及焉. 起居飮食嗜惡之識 殊方異域 而必往者. 豈有他哉? 專以切磋琢磨 求盡其道大有成 而慕望愛悅 如是之至勤也(남북부지만유여리 이근일세필왕구현인군자 이위사우 여불급언. 기거음식기오지식 수방이역 이필왕자. 기유타재? 전이절차탁마 구진기도대유성 이모망애열 여시지지근야)
위 글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유호인(兪好仁·1445~1494)이 벗 조위(趙瑋·1454~1503))에게 시를 써 주면서 쓴 서문(贈曺太虛詩序·증조태허시서의 한 부분으로, 그의 문집인 ‘뇌계집(㵢谿集)’에 수록돼 있다. 좋은 스승과 벗을 만나고자 하는 심경을 피력하고 있다. 스승이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찾아가며, 스승을 직접 만나지 못하면 그가 남긴 저술뿐만이 아니라 행적이나 기호까지 따른다고 했다.
유호인이 가장 큰 스승으로 여긴 인물은 영남학파의 종조(宗祖)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다. 유호인은 1474년(성종 5)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엘리트였으며, 우리나라 풍속 지리 인물 등을 상세히 담은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합천군수로 재직하던 중 49세의 나이에 병사했다. 유호인은 조위의 소개로 김종직을 만나 그의 문인이 됐다. 조위는 김종직의 처남이자 제자였다. 그 인연으로 유호인은 28세 때인 1472년에 김종직·조위와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학문하는 사람이 아니면 굳이 스승을 찾지 않는다. 학문도 자신을 갈고닦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명예나 출세를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나의 삶에 귀감이 되는 스승 한 분 정도는 모시고 사는 게 더 의미 있는 인생이 아닐까?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