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온 객 황량한 변방에 들어오니(遠客投荒戌·원객투황술) / 외로운 성은 큰 바다를 베개 삼았네.(孤城枕大洋·고성침대양) / 장군의 흰 깃발 사라지고(將軍白羽盡·장군백우진) / 병사들의 창에 짙푸른 녹이 슬었네.(戰士綠沈槍·전사록침창)
전남 나주 출신 의병인 금계(錦溪) 노인(魯認·1566~1622)의 시 ‘부산을 지나며(過釜山)’로, 그의 문집인 ‘금계집’에 실려 있다. 그가 이 시를 읊은 때는 상황이 좀 특이했다. 노인은 1582년(선조 15)에 진사시에 입격한 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율의 휘하에서 이치·행주·의령 싸움에 참전했다.
알다시피 임진왜란으로 부산진성은 사람은 물론 개와 고양이 한 마리까지 일본군 손에 다 죽었다고 할 정도로, 참혹한 살육의 현장이 됐다. 동래성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데다 아직 전쟁이 진행 중이었으므로, 비록 포로 신세이지만 당시 배로 부산을 지나던 노인의 눈에 비친 부산 모습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폐허 그 자체였다. 특히 시의 3, 4행에서 황량한 부산 모습을 잘 묘사했다.
그의 삶은 진정한 선비로서 자세를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아주 드라마틱했다. 왜군의 침입에 대해 1차는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고, 2차는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1597년)이라 한다. 노인은 정유재란 때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되면서 포로가 돼 일본에 잡혀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중국 배를 타고 명나라로 탈출했다. 중국 장저우와 싱화, 푸젠, 베이징을 거쳐 1599년(선조 32)에 귀국했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해 수원부사 등을 지냈다.
위 시는 노인이 일본으로 끌려갈 때 부산을 지나가면서 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문집 외에 보물 제311호인 ‘금계일기’를 남겼다. 필사본으로 1599년 2월 22일부터 같은 해 6월 27일까지 일기 내용이 남아있다. 일본에서 겪은 포로 생활과 탈출 경위, 중국에 머무는 동안 있었던 일 등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부산에서 필자의 은거지인 목압서사(경남 하동군 화개면)를 방문한 손님과 임진왜란 당시의 부산을 이야기하는 중에 금계 노인이 쓴 위 시가 생각났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