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今宵花同宿·금소화동숙
모란꽃 이슬 머금어 진주 같은데(牧丹含露眞珠顆·목단함로진주과) / 신부가 꺾어선 창 앞을 지나면서(美人折得窓前過·미인절득창전과) / 빙긋이 웃으며 신랑에게 묻기를(含笑問檀郞·함소문단랑)/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花强妾貌强·화강첩모강)/ 신랑이 일부러 장난삼아(檀郞故相戱·단랑고상희) / “꽃가지가 더 나은데?”(强道花枝好·강도화지호) / 신부는 꽃을 던져 버리고(美人拓花勝·미인척화승) / 밟아 짓뭉개면서(踏破花枝道·답파화지도)/ “꽃이 나보다 예쁘다면(花若勝於妾·화약승어첩) / 오늘 밤에 꽃이랑 주무세요!”(今宵花同宿·금소화동숙)
고려 시대 대문장가인 백운 이규보(1168~1241)의 시 ‘折花行(절화행·꽃을 꺾어서)’으로 ‘大東詩選(대동시선)’에 수록돼 있다. 오늘날의 남자들은 아내나 연인이 “나 예뻐?”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당연히 예쁘지!”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시에 등장하는 남자는 마치 여성이 어떤 식의 반응을 하는지 보려는 것처럼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이에 여성은 짐짓 화난 듯 꽃을 던져 밟아 버리고는 신랑에게 “오늘 밤엔 꽃과 함께 주무시라”고 꼬집듯 말한다.
지금보다 800년 전쯤인 고려 시대에 창작된 시이지만, 현대의 상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당대 최고의 문호로 일컬어지던 이규보가 어떤 계기로 위 시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도 들어있지 않은 작품이다.
그의 경험담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시의 소재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시를 읽다 보면 스토리 전개도 생동감이 있고, 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여주는 것처럼 전체 이미지가 또한 선명하다. 남자들은 위 시를 읽고선 ‘여성을 어떻게 달랬을까?’라는 궁금증이 들 것이고, 여성 가운데서는 ‘나 같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한 분도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여성들이 이전과는 달리 발언권이 센 편이다. 그리하여 여자들이 삐치면 남자들은 당황해하거나 난감해한다. 위 시를 읽다 보면 고려 시대에도 남자들 못지않게 여자들의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여하튼 이규보의 시 치곤 재미있어 골라보았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