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을 문(口-8)아닐 불(一 -3)꼼꼼할 정(米-8)밝을 명(日-4)
배우면 배울수록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지식을 갖출 수 있다. 그런데 정보를 많이 얻는다고 저절로 지식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식을 앎이라고 한다면, 지혜와 식견 그리고 인식으로 본다면, 정보가 많다고 해서 지식을 잘 갖추었다고 말할 수 없다. 요컨대 배우는 것만으로는 안다고 할 수 없다. 배움은 새로운 정보를 얻는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배움이 앎이 되려면, 그 정보가 옳은지 그른지를 확인하고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배움은 그저 배움일 뿐, 앎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은 배움이 곧 앎이라 여긴다. 배운 것이 많으면 아는 것도 많다고 여긴다. 여기서 착각과 오류가 발생한다. 안다는 착각, 그 착각으로 말미암은 판단 착오가 일어난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고 의도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착각과 오류 때문이다. 특히 이런 착각과 오류는 지식 또는 학문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 이른바 지식인이나 전문가라는 이들이 많이 저지르며 그 폐해도 심각하다. 거기서 ‘使世益亂’(사세익란) 곧 ‘세상을 더욱 어지럽히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면 배움이 앎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問(문)’ 곧 ‘물음’을 던져야 한다. 배운 것, 새롭게 보고 들은 정보가 과연 옳은지 그른지, 타당한지 부당한지 따위를 요모조모 묻고 따져서 밝혀야 한다. ‘문자’ ‘道德(도덕)’에 나온다. “學問不精, 聽道不深. 凡聽者, 將以達智也, 將以成行也, 將以致功名也. 不精不明, 不深不達.”(학문불정, 청도불심. 범청자, 장이달지야, 장이성행야, 장이치공명야. 불정불명, 불심불달) “배우고 묻는 것이 꼼꼼하지 않으면 도를 듣는 것이 깊지 않다. 무릇 도를 듣는 것은 지혜에 이르기 위함이고 행위를 이루기 위함이며 공명을 세우기 위함이다. 배우고 묻는 것이 꼼꼼하지 않으면 밝지 못하고, 도를 들음이 깊지 않으면 통달하지 못한다.”
묻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꼼꼼하게 따지는 일만은 아니다. 그 정보를 따지는 자신까지, 자신의 관점과 견해, 판단까지 꼼꼼하게 따지는 일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