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전진무의탁이 없어졌대. 알고 있었냐.” 최근 아들을 군대 보낸 친구가 호들갑 떤다. 전진무의탁, 아마 한자로는 ‘前進無依託’으로 쓰지 싶다. ‘피(P)가 나고, 알(R)이 배고, 이(I)가 갈린다’고 해서 PRI로 명명(전혀 근거 없다)됐다는 사격술 예비훈련 자세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다. 술 취하면 군대 얘기를 안주 삼는 아저씨들은 다 안다.
전력으로 달리다가 급제동해 상체를 구부리고 한쪽 다리를 뒤로 쭉 편다. 여기서 손등이 하늘을 보도록 바닥에 닿을 듯이 한 뒤, 그 위에 3㎏가량 소총을 얹고 어떤 것에도 몸을 지탱하지 않은 채 버틴다. 이게 전진무의탁이다. 한번 해보면, 왜 그리 악랄한지 금방 알 수 있다. 도무지 왜 하는지 모를, 이 쓸모없는 자세는 비효율적이라는 지적 속에 십수 년 전 사라졌나 보다.
“로봇이 전쟁하는 시대에, 웬 구닥다리 전진무의탁 타령이냐”고 핀잔을 주자,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시대가 변해도 절대 안 바뀌는 것이 있다”고. 안 바뀐 것은 ‘군 생활 최고의 간식’ 초코파이다. 훈련병인 아들이 종교 활동차 교회에 가서 초코파이를 받아먹었다고 그렇게 좋아하더란다. 군대에서 초코파이가 주는 위로와 달콤함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는 얘기다.
누가 엿들었으면 비웃고 말았을, 50대 군필 아저씨 둘의 대화는 ‘국제신문 존폐 위기’로 이어졌다. “기업회생은 어떻게 돼가냐. 국제신문은 사냐, 죽냐”는 친구의 물음에, “형님은 내일(지난 1일) 또 서울(능인선원)에 데모하러 간다”는 답으로 대신했다. 그리 길지 않은 대화에도 체력이 떨어진 아저씨 둘은 그 뒤로 말이 없었다.
사라지는 것과 바뀌지 않고 남는 것. ‘로봇이 전쟁까지 하는 시대’에 종이신문은 사라져야 할까, 살아남아야 할까. 글이 무겁지 않았으면 해서 우스갯소리로 시작했지만, 지금부턴 꽤 심각한 얘기를 해야겠다. 국제신문은 최근 주요 지면을 ‘국제신문 기업회생’ 소식으로 채웠다. 한국 언론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 행여 불편했던 독자가 계셨다면, 지면에 쏟아낸 기사가 국제신문이 처한 ‘절박함의 크기’라 여기고 조금만 더 인내해주셨으면 한다.
국제신문은 2025년 5월부터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자력으론 도저히 회사를 정상화할 수 없어 법원의 관리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전·현직 직원 147명이 체불 임금·퇴직금을 채권으로 삼아 신청했다. 지금은 법원 허가를 받아 새로운 인수 예정자와 인수합병(M&A)을 추진 중이다. 국제신문이 M&A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회생절차를 졸업해 건강한 지역 언론으로 돌아가려면, 대주주이자 최대 채권자 능인선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능인선원은 동의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회생절차가 얼마나 혹독한지, 겪어보지 않아도 짐작으로 알 수 있을 테다. 국제신문 전 구성원은 하루하루 유리 조각을 삼키는 듯한 고통을 참으며, 개시 신청 이후 2년 가까이 천 리 길을 걸었다. 생계가 무너지는데도, 국제신문을 살리자고 140여 명 직원이 남았다. 그저 밀린 임금·퇴직금 받자고 한 싸움이라면, 이미 쉽게 끝났을 수도 있다. 국제신문은 그러나 이 싸움을 맘대로 중단할 수 없다.
국제신문이 천 리 가시밭길을 걸을 수 있게 한 건 시민사회가 만들어준 ‘쓸모’다. 140여 개 시민단체 원로가 “국제신문을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나서줬다. 민주언론시민연합·기자협회·민주노총 등 언론·노동계가 너나 할 것 없이 “국제신문을 지키자”며 성명을 내고 탄원했다.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 국회의원이 정파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국제신문 정상화를 촉구했다. 전재수 부산시장, 최재원 부산대 총장은 “부산 울산 경남 현대사와 함께해온, 소중한 공공 자산이자 지역민의 자존심 국제신문을 살리는 데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부산시의회, 16개 구·군도 목소리를 보탰다. 무엇보다 지난 6일 기준, 길 가던 장삼이사 6800여 명이 국제신문 정상화를 위해 서명했다.
그러니 국제신문은, 능인선원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동의 없인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지역 발전을 위한 공공재’ ‘지역 민주주의 공론장’ 역할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바람에 부응해야 한다. 시민사회가 만들어준 ‘쓸모’가 국제신문을 버티게 했듯, 79년 국제신문은 이제 그 ‘쓸모’가 80년을 넘어 100년을 이어가도록 할 의무가 있다. 앞으로 더 젊고 훌륭한 인재가 들어와 지역 민주주의를 위해 펜을 들 수 있는 국제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국제신문 회생절차 가결 기한은 오는 20일까지다. 열흘 정도 남았다. 국제신문이 ‘쓸모없는’ 전진무의탁처럼 사라질지, ‘쓸모 있는’ 초코파이처럼 살아남을지 곧 결정된다. 마지막 며칠, 마지막 힘을 모아주시길 시민사회에 염치없이 부탁드린다. 국제신문은 이 겨울이 가기 전 반드시 살아남아, 따뜻한 봄날 ‘쓸모 넘치는’ 지역 정론으로 시민사회에 보답할 수 있기를 사무치게 희망한다.
권혁범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