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식량안보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해외 수산영토를 개척해 온 원양산업이 유례없는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국내 원양어선 198척 중 선령 30년을 넘긴 노후 어선이 157척으로 전체의 약 80%에 달하며, 장기 승선 부담과 고강도·고위험 수작업 구조로 인한 선원 수급난이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몬트리올 의정서에 따른 오존층파괴 및 온실가스화를 저감하기 위해 수소불화염화탄소(HCFC) 냉매퇴출 규제,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대기오염 및 온실가스 감축 지침, 어선원 안전과 근로환경을 규정한 국제노동기구 어업노동협약(ILO C188) 등 국제규범이 거세게 압박해 오고 있다. 따라서 이제 단순한 부분개조나 소규모 장비교체 수준을 넘어 원양어선의 설계와 조업 체계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때다.
이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페로제도 등 북유럽 어업 선도국들은 척당 1000억 원 규모의 대형 어선을 조업, 선상가공, 급속냉동, 에너지관리, AI 데이터가 결합된 고부가가치 해양산업 플랫폼으로 탈바꿈시켰다. 우리 역시 개별 기자재 중심의 단품 개발에서 벗어나 선박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국가 차원의 차세대 어선 전환 프로젝트를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반가운 소식은 국내 수산 및 조선해양 분야의 핵심 전문기관들이 손을 잡고 이러한 시대적 과제 해결에 선제적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KOMERI)을 총괄로 국립부경대학교,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그리고 선박설계 전문기업 디섹(DSEC)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 해양수산부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KIMST)이 공고한 ‘친환경 자동화 기반 원양산업 전환 핵심기술 개발’ 기획용역 입찰에 적극 참여하는 등 구체적인 실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기획사업의 핵심은 단순한 이론연구가 아닌 실제 현장에 적용 가능한 5대 중점 세부기술과 실증선 기반 체계를 도출하는 데 있다. 첫째, 어획물을 쉽게 올리고, 노동 강도를 낮추는 선상가공 자동화 모듈 및 친환경 어구 기술. 둘째, 초저온 급속냉동 성능을 유지하면서 친환경 냉매를 이용하는 냉동기 및 냉동전력 통합 에너지제어기술. 셋째, 디젤전기와 배터리보조 등 조업 특화형 하이브리드 추진전력 시스템 및 저항저감 선형설계. 넷째, 어군예측을 위한 AI 비전 어획물 자동식별 및 스마트 운항조업을 지원하는 통합 AI 데이터 플랫폼. 마지막으로, 핵심기술을 단일선박에 탑재하여 시운전 및 장기 원양조업 환경에서 검증하는 실증선 설계, 건조 및 실해역 운용 로드맵으로 구성되어 있어 연구개발을 시작으로 건조, 실해역 실증까지 체계적으로 수립하게 된다.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열쇠는 바로 부산시의 정책적 의지와 주도적 역할이다. 부산은 대한민국 원양어업의 발상지이자 전진기지인 감천항을 품고 있으며, 원양선사와 수리조선, 조선기자재 기업, ICT융합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결집된 국내 유일의 어선산업 생태계 거점이다. 더욱이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과 연계하여 정책과 현장, 기술이 하나로 응집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이 성숙해 있다.
부산시는 해양수도 완성을 위해 해양수산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우수한 제조 및 실증 인프라가 확충되어 있는 부산에서 본 기획연구와 후속사업인 국가 연구개발(R&D) 실증사업이 반드시 추진되도록 강력히 설득하고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부산 관내의 국립부경대학교를 비롯해 KOMERI, KMI 등 지·산·학·연의 역량이 결합할 때, 부산은 차세대 스마트 수산기자재와 친환경 어선산업을 선도하는 K-해양수산의 핵심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다.
수산기자재의 친환경 스마트화 사업추진은 단순한 장비개발 및 대체가 아닌 대한민국 수산영토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고 신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국가적 사명이다. 이번 컨소시엄의 적극적인 도전과 부산시의 과감한 행정적 지원이 더해져, 대한민국이 글로벌 해양수산 기술패권을 주도하는 위대한 첫걸음이 부산에서 시작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