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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금정구가 추석 전 게시한 불법 현수막. 국제신문DB |
기초지자체가 유동 인구가 많은 길거리에 업무 수행 핑계로 불법 현수막을 대거 설치하고도 수거나 행정 제재는커녕 나 몰라라 한다니 기가 찬다. 현행 옥외광고물법과 관련 조례에 따르면 구·군이 공적 목적으로 제작한 현수막이라도 행정 절차를 거친 뒤 지정 게시대에만 걸어야 한다. 명절 인사, 수능을 앞둔 수험생 응원부터 각종 행사 안내 등 지금도 길거리 곳곳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기초지자체 명의의 현수막 상당수가 불법 게시물인 셈이다. 국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22년부터 올해까지 부산지역 16개 구·군은 약 10만9100장의 현수막을 제작해 관내 곳곳에 게시했는데, 이 중 불법 현수막이 절반가량인 5만1000장에 달했다.
많은 지자체가 현수막 담당 부서조차 불법 게시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내걸었던 것으로 드러나 심각성을 더했다. 지정 게시대에 거는 것 외에는 광고물을 만든 부서가 현수막 담당 부서에 별도 통보 없이 알아서 다는 데다, 붙일 현수막은 많고 지정 게시대가 부족하다 보니 불법인 줄 알면서도 게시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기초지자체가 자기들이 붙인 불법 현수막에는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산다. 금정구는 윤일현 구청장이 지난 추석 전 자신의 명의로 제작한 명절 인사 현수막 32장을 구 곳곳에 게시, 신고까지 접수됐으나 구청장과 이를 게시한 공무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았다. 280여만 원을 들여 구가 제작·게시했기 때문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다. 반면 민간 불법 현수막에는 가차 없이 과태료를 부과했다. 2023년부터 올해까지 16개 구·군이 불법 현수막에 매긴 과태료만 53억 원이 넘는다.
법을 엄격히 준수하고 집행해야 할 행정기관이 불법 행위를 자행하는 것도 모자라 행정 제재도 셀프로 면제받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구·군은 지자체 명의의 불법 현수막 실태를 정확히 파악한 뒤 모두 거둬들이고, 불법 행위에 대한 과태료도 스스로 부과해야 마땅하다. 현수막 수요가 많으면 지정 게시대를 늘리거나 SNS 등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면 될 일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불법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공적 목적을 내세우지만 실은 선출직 기초지자체장을 홍보하려는 정치적 의도는 없었는지 ‘불법 현수막 공해’에 대한 구·군의 근본적 반성도 시급하다.
나아가 주요 길거리를 점령한 정치 현수막 역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정당 현수막은 옥외광고물법상 허가·신고 및 금지·제한 규정 적용에서 배제되는데, 정책 홍보보다 극단의 언어로 얼룩진 게시물도 적지 않다. 이는 시민의 피로감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도시 미관까지 해친다는 지적을 받는다. 행정안전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나, 혐오·비방성 표현의 정당 현수막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은 지지부진하다. 법 개정 여부를 떠나 정당은 정제된 언어로 정책을 홍보하고 입장을 알리는 자정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