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부산항에 컨테이너선 한 척이 돌아왔다. 한국 컨테이너선으로는 처음 북극항로를 통해 유럽을 왕복한 팬스타 아크로호다. 8월 22일 부산을 떠난 지 50일 만이다. 얼음 바다를 지나 유럽으로 향했던 배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제부터다. 과연 두 번째, 세 번째 배도 이 길을 오갈 수 있을까.
북극항로는 부산에 새로운 기회다. 지금까지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배는 주로 수에즈운하를 통과했다. 북극항로는 러시아 북쪽 바다를 지나는 지름길이다. 항해 거리를 크게 줄일 수 있고, 운송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중동의 전쟁 등으로 기존 뱃길의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새로운 항로의 가치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부산에 북극항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배가 빨리 도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뱃길이 열리면 항만과 물류는 물론 조선, 선박기자재, 연료 공급, 선박 수리, 해상보험과 금융까지 새로운 시장이 생길 수 있다. 부산과 울산, 경남은 이미 세계적인 조선·해양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얼음을 견디는 선박을 만들고, 극지 운항에 필요한 장비와 기술을 개발하며, 선박에 연료와 물자를 공급할 수 있다. 북극항로가 단순한 물류사업을 넘어 동남권 산업 전반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으로 북극항로 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성이다. 거리가 짧다고 반드시 운송비가 저렴한 것은 아니다. 얼음을 견디는 특수선박이 필요하고, 쇄빙선 지원과 높은 보험료 등 추가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운항할 수 있는 계절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연구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부산~로테르담 구간에서 수에즈항로를 이용하는 2만 개 컨테이너 적재 규모의 대형선은 컨테이너 1개당 운송비가 726달러로 추산됐다. 반면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4300개 규모 내빙선은 1128달러였다. 선박 규모가 다른 조건에서 계산한 결과지만, 북극항로가 아직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러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무시할 수 없다. 북극항로의 주요 구간은 러시아 연안을 지난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통항 규정, 보험 문제에 따라 운항 여건이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줄어드는 현상 역시 마냥 반길 일이 아니다. 북극 생태계 훼손과 기후위기라는 무거운 대가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정부도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북극항로 특별법 제정으로 정책 기반을 마련했다. 2030년 정기 상업항로 개통이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무엇보다 첫 시범운항에서 얻은 자료를 철저하게 분석해야 한다. 얼마나 빨리 운항했는지뿐만 아니라 실제 비용은 얼마였는지, 운항 과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화주들이 다시 이용할 의사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기업이 돈을 벌 수 없는 항로는 정부 지원만으로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부산의 전략도 분명해야 한다. 모든 컨테이너 화물을 북극항로로 유치하겠다는 막연한 구상보다 경쟁력 있는 분야부터 육성해야 한다. 고부가가치 화물과 에너지 운송, 극지 선박 건조와 수리, 해상보험과 금융, 전문인력 양성 등이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북극항로에 필요한 기술과 서비스가 부산에 모이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항로가 열려도 선박은 외국에서 만들고, 보험과 금융은 다른 나라가 맡고, 화물만 부산을 거쳐 간다면 기대했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부산 기업의 매출이 늘고 청년들의 일자리가 생겨야 북극항로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북극항로는 하루아침에 완성될 사업이 아니다. 수십 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북극항로 시대의 성패는 지도 위에 그어진 새로운 뱃길이 아니라 그 길을 오가는 배와 화물, 그리고 부산에 남는 산업과 일자리가 결정한다. 첫 배는 돌아왔다. 이제 부산이 답해야 할 차례다. 그다음 배는 언제, 누구의 화물을 싣고, 어떤 이익을 남기며 다시 떠날 것인가.
장호정 해양수산부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