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부산 가덕도 외양포 포진지에서 이색 음악회(사진)가 열렸다. ‘2026 부산비엔날레’의 워크숍 ‘가덕도 새소리 음악제’. 가덕도신공항이 들어서면 사라질 가덕도 역사유적지와 주민, 자연·생태의 삶터에서 생명의 지속가능성을 외치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시인 고명자의 시 낭송부터, 양일동의 판소리 ‘가덕도 아리랑 비나리’, 싱어송라이터 양진호의 ‘가득가득 가덕도’, 부산에 거주하는 일본인 나카의 ‘사라진 소나무’, 김지혜의 피리 생황 태평소 등 연주가 이어지며 두 시간 반 동안 이 일대는 가덕도 주제의 사운드아트로 가득 찼다. 1부에서는 음악제 전에 채집한 새소리 바닷소리 등 이곳의 소리를 녹음본으로 들려주고, 2부에서는 풍경, 돌로 만든 악기 등을 이용해 관객이 즉석에서 현재의 가덕도 소리를 만드는 퍼포먼스가 펼쳐져 음악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이날 워크숍은 부산비엔날레 출품작가인 이동근의 사진·기록물 작품과 연계돼 개최됐다. 옛 부산남고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은 한국 가덕도, 대만 금문도, 일본 오키나와 등 ‘전쟁’을 상징하는 세 섬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며 생명과 평화, 연대를 이야기한다. 금문도(양안 군사적 긴장)와 오키나와(미군기지 갈등)는 현재진행형인 충돌을, 가덕도는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왜변, 러일전쟁, 일제강점기 전초기지이자 방어막의 주요 무대였던 만큼 과거의 분쟁을 대변한다. 이런 연유로 가덕도는 ‘다크 투어리즘(전쟁·수탈의 과거를 되새기는 역사교훈여행)’의 대명사가 된 장소이기도 하다.
음악제가 열린 외양포 포진지는 가덕도 다크 투어리즘의 핵심 유적지다.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진해만 요새 사령부’를 세워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군사거점으로 활용한 곳이다. 포진지에는 엄폐막사 2개소와 탄약고 3곳, 탄약고 사이사이 지름 3m가량 포좌를 만들어 총 6문의 280㎜ 유탄포를 배치한 흔적이 남아 있다. 포진지 뒤로 가면 32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일본군이 원주민을 쫓아내고 사령관실과 병사, 무기고로 썼다가 해방되자 주민이 돌아와 삶을 이어온 공간이다. 마을에 남은 우물과 공동목욕탕, 적산가옥은 아픈 식민지 주둔의 역사를 증언한다. 포진지에서 출발해 맞은편 산길을 올라가면 일제가 군사시설로 활용한 국수봉 포진지 관측소(해발 250m)와 산악보루가 나온다. ‘외양포 포대와 말길’이라 불리는 이 일대는 120여 년 전 개설 때 원형 그대로여서 산림청이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했다. 당시 석축 기술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건설 노동에 강제동원된 우리 민족의 아픔이 서렸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보존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인근 대항항 해안 절벽에는 일제가 태평양전쟁 말기 진해만 방어를 위해 만든 인공동굴이 있다.
이르면 내달부터 가덕도신공항 건설공사가 시작되면서 이들 유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섬 남부 상당 부분이 신공항 예정부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문화재 지표·발굴조사에서 역사적 가치를 평가받으면 기록·이전 보존 정도는 될 수 있겠으나, 원형 그대로 유지는 불가능할 전망이다. 잊지 말아야 할 근대역사 현장만 멸실되는 게 아니다. 여기 주민은 80년 삶터를 잃고 강제이주된다. ‘여기서 나가면 뭐 먹고살아야 할지, 바다만 나가도 배부른데…’. 부산남고 전시장에서 상영 중인 영상작 속 가덕도 주민의 하소연이 이곳까지 메아리친다.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면서 가덕도 자연 지형 역시 크게 바뀐다. 이 일대 24만 ㎡ 규모의 ‘백 년 숲’ 동백군락지가 없어지고, 울새 참새 종다리 상괭이 수달 등 서식종도 갈 곳을 잃는다.
부산의 미래가 달린 대규모 국책사업을 이제 와 돌이킬 수는 없겠지만, 그 이면을 아쉬워하고 기억해야 할 과제가 남는다. 머지않아 자취를 감출 역사와 사회, 자연·생태의 함성을 듣고 기록해 남기는 작업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날 외양포 일대를 가득 메웠다. ‘가덕도 외양포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새들의 노래가 우리를 반깁니다. 새소리와 함께 파도와 바람, 풀벌레 소리까지 한 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섬마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의 산을 허물고 바다를 메우는 공사가 시작됩니다. 100년이 넘은 포진지가 파괴되고, 81년째 이곳에 살아온 32가구 주민의 집도 사라집니다. 우리는 사라져 가는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가덕도의 소리가 오래도록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생명과 평화의 소리를 함께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음악제의 안내문을 읽으며, 개발과 보존이 불협화음을 내는 가덕도에서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 ‘불협하는 합창’을 곱씹는다. 나름의 기억법으로, 곧 가덕도를 다시 찾을 계획도 세웠다. 유적지뿐만 아니라 신공항 건설로 훼손이 불가피한 연대봉 일대 갈맷길도 늦기 전에 걸어야겠다.
이선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