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정신이란 새로운 길을 열고 선구자가 되는 자세를 말한다. 이는 혁신과 변화의 원동력이 되는 중요한 가치로, 미지의 영역이나 미개발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기반을 마련하는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정신이다. 1968년에 발표된 국민교육헌장에도 ‘우리의 처지를 발판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는 내용이 나온다.
개척의 특성을 살펴보면 개척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탐험이 미지의 지역을 찾아내는 데 중점을 둔다면 개척은 그곳에 정착하고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개척자에게는 투철한 도전정신과 창의력, 그리고 숱한 어려움을 견디는 끈질긴 인내력이 요구된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의료계에는 개척자 정신이 대단히 중요하다. 기원전 460년께 태어난 히포크라테스는 관찰에 근거한 의술을 중시한 합리주의자였다. 이후 로마의 의사 갈레노스는 신체의 장애를 질병으로 정의하고 치료의 목표를 기능의 정상적 회복에 둬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을 집대성했다. 16세기에는 깨끗한 상처 치료를 주장한 파레가 있었고, 19세기에는 세균을 발견한 파스퇴르와 소독법을 발전시킨 리스트가 등장했다. 이어 20세기 영국의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하면서 감염성 질환 치료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됐고 수술법과 장기이식, 마취 및 영양 공급, 암 진단 기술에 이르기까지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어졌다. 이 같은 의료인과 과학자의 개척자적 노력이 오늘날의 의료 수준을 만들어 냈으며, 그 결과 인간 수명은 연장되고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개척에는 필연적으로 실패와 좌절이 따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와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느냐 하는 점이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실패와 패배에 대한 감각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과거 미국 사회의 연구에서 실패의 좌절감을 ‘패배감각 지수’로 표현한 사례를 보면, 유대계 미국인은 +5, 게르만계는 +3 정도로 나타났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패배감각 지수는 이보다 훨씬 낮지 않을까 싶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학력 취업 소득 주택 등 에서의 상대적 박탈감이 패배감으로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분위기 속 학교 교육에서 석차를 매기지 말자거나 경쟁을 없애자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과연 실패를 겪지 않고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초등학교 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실패를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회복력을 기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패자부활’의 문화가 비교적 발달해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는 한 번의 실패가 지나치게 오래 따라다니고 격차를 만회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와 관련해 오래전 미국에서 있었던 ‘알바트로스호’의 일화가 생각난다. 10대 학생들이 배 위에서 생활하며 항해를 배우던 이 선박은 1961년 5월, 흔적도 없이 밀어닥치는 강력한 돌풍인 ‘화이트 스콜’을 만나 순식간에 침몰했다. 이 사고로 학생 4명을 포함해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내가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생존자들을 맞이한 학부모들의 태도다. 귀환한 항구에서 아버지 대표는 선장에게 다가가 “화이트 스콜을 이길 수 있는 배를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당부했고, 어머니 대표는 학부모들이 모은 기금을 전달하며 연구를 부탁했다. 나는 이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개척자 정신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사고가 났다고 해서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희생을 딛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같은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더 안전하고 나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개척자 정신의 본질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실패를 다음 사람의 성공을 위한 든든한 발판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개인에게도, 우리 사회에도, 그리고 특히 끊임없는 도전을 요구받는 의료계에도 가장 필요한 개척자 정신이라고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