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부산에서 강의가 있었다. 평소에는 내가 쓴 책에 관한 이야기를 요청받는데, 이번에는 주제가 더 구체적이었다. 강릉에서 서점을 공동 운영하는 경험을 ‘지역 소멸’의 관점에서 나눠 달라고 했다. 나는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직장 생활을 했던 이야기부터, 강릉 서점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와 다양한 만남을 소개했다. 강의의 핵심은 지역에서 잘 살아가는 건 나 혼자만의 선택이 아니라 주변인들의 연결과 환대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참여자들이 지역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더 많은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그중 놀랐던 건 한 참여자가 들려준 ‘공감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기 주변에는 지역 소멸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고 했다. 청년들은 언제나 일자리와 인프라를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고, 빡빡하고 경쟁이 많아도 어쨌든 지낼 만하니까 서울에 모이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지역에 살고 싶은 사람은 그런 기회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맘 편히 지내면 된다는 것이다.
떠남과 머무름이 온전히 한 개인의 선택이라는 논리는 낯설지 않다. 심지어 최근에는 그 ‘개인’이 꼭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은 듯하다. 북항 친수공원에 나타난 상어 ‘부캉이’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논리로 말하기 때문이다. 쟤도 살 만하니까 남아 있는 거 아니냐고, 힘들면 알아서 나갈 텐데 억지로 내보낼 필요가 있냐고 말이다.
친수공원 인공 수로에 열흘 넘게 머무르고 있는 부캉이를 두고 시민은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우연히 수로로 들어왔다가 나가는 길을 잃었을 가능성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수로 내부에 먹이가 풍부해 계속 머무르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친수공원 수로에 예전부터 숭어나 전갱이가 많이 잡혔다는 주민의 인터뷰는 이러한 추측에 신빙성을 더한다.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나는 건 상어나 청년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청년에게는 서울에서 이루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가고 싶은 대학이나 기업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처음부터 서울에서 태어나 그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자리도, 문화예술도, 인프라도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서울이야말로 모두가 살기를 원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지역의 소멸을 걱정하기보다, 청년들을 다 수용할 수 있도록 서울이 충분히 커지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억지로 사람을 내보낼 생각하지 말고, 서울을 더 편리하고 거대하게 가꾸는 데에 힘을 모으는 편이 모두에게 더 이로울지도 모른다. 지역 소멸은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부캉이가 북항 친수공원에 왜 머무는지를 놓고 다양한 추측과는 반대로, 장기 체류 전망에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인다. 수심이 얕은 인공 수로는 부캉이가 오래 머물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공적인 LED 조명이나, 수많은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의 진동과 소음 역시 감각이 예민한 상어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당장은 잘 적응하며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금세 건강 상태가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을 주지했으면 한다. 물대포와 그물을 사용해 계속해서 구조 작업을 펼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도 이런 인공 수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얼핏 보면 누구에게나 머물기 좋은 환경으로 보여도, 밀려드는 청년을 감당하기에는 한없이 얕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인공 수로가 좋은 곳이냐 아니냐 더 커져야 하는 거 아니냐 골몰하는 사이, 바다 전체가 점점 ‘살기 힘든 곳’이 돼 간다는 사실이다. 부캉이가 처음 친수공원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도 뜨거운 관심과 함께 해양 생태계 변화에 우려를 표하는 여론도 많았다.
‘개인’과 ‘선택’으로만 가득 찬 사고 생태계는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공동의 책임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한 삶의 영역까지도 좁힌다. 떠나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면, 머무르고 싶어도 오래 살기 어렵다면, 그것을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어떤 고민과 공감대가 필요할까? 2차 구조 작업에도 불구하고 부캉이는 여전히 인공 수로에 남아 있다. 떠남과 머무름, 연결과 환대. 부캉이는 이런 질문을 던진 채 유유히 북항을 헤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