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이라는 단어에는 낡고 익숙한 이미지가 배어 있다. 문전옥답과 번듯한 집, 통장과 가업이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풍경이다. 그래서 상속법은 가진 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고, 서민에겐 평생 들여다볼 일 없는 남의 나라 법이었다. 하지만 그 견고한 이미지가 전복되고 있다. 요즘 회생·파산 법정에서 마주하는 상속은 재산이 아니라 빚의 상속이다.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반년쯤 지났을 무렵, 생전 들어본 적 없는 대부업체의 독촉 소장이 자식에게 날아드는 비극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물려줄 유산의 자리를 빚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은퇴 후 생활비를 대출로 돌려막은 노년의 빚, 폐업하고도 털어내지 못한 가게의 빚, 자식이나 형제를 위해 섰던 빚보증이 죽음 이후에도 고스란히 찌꺼기로 남는다. 자산을 가진 집은 자산을 물려주지만, 자산 없이 버티던 집은 처절하게 버티던 흔적을 물려준다. 이제 상속은 부의 대물림을 넘어, 가난이 대물림되는 통로가 됐다. 세대 간 불평등이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며 한층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이다.
이 변화의 최전선에 부산이 서 있다. 8대 특별·광역시 중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만큼 상속 개시가 빈번하다. 자영업 비중이 높아 폐업은 빚을 남기고, 청년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부모 세대의 노후는 벼랑 끝에 가깝다. 재산보다 빚이 많은 상속이 일상화되는 곳에서, 상속법은 더 이상 부자들의 법이 아니라 서민 가정의 절박한 생존법이 된다.
문제는 법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법은 상속인에게 세 갈래 길을 제시한다. 재산과 빚을 모두 껴안는 단순승인, 재산 범위 내에서만 빚을 갚는 한정승인, 둘 다 거부하는 상속포기다. 그런데 이 무거운 결단을 상속 개시를 안 날부터 단 3개월 안에 내려야만 한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거나 부모의 통장을 해지하고, 낡은 차를 파는 행위만으로도 빚을 몽땅 떠안는 단순승인으로 간주된다. 경황 없이 장례를 치르고 슬픔을 추스르는 석 달이 남은 삶의 운명을 가르는 셈이다. 법은 유족에게 그저 “알아서 법을 찾고,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차갑게 말할 뿐이다.
간신히 법을 알아보고 선택한 사람 앞에도 함정은 도사리고 있다. 상속포기를 하면 빚이 다음 순위인 형제나 조카에게 넘어가므로 흔히 한정승인을 권장한다. 하지만 한정승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채권자들에게 공고를 내고 비율대로 배당하며, 필요시 재산을 매각해 빚을 정리하는 ‘청산 절차’를 밟아야 비로소 악몽이 끝난다. 이를 모른 채 아는 채권자에게만 빚을 갚거나 재산을 방치하면, 수년 뒤 다른 채권자의 소송이 날아들고 한정승인의 보호막마저 사라진다.
더 뼈아픈 사실은 이 치명적 함정을 전문가들조차 방관한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변호사와 법무사가 “후순위 상속인에게 피해가 안 가게 한정승인을 하라”고 조언한 뒤, 수임료를 받고 결정문만 받아낸다. 그 뒤에 반드시 청산이 따라야 한다는 것, 법원이 파산관재인을 세워 대신 빚을 정리해 주는 ‘상속재산파산’이라는 안전한 길이 있다는 사실은 제대로 안내되지 않는다. 결국 상속법의 혜택은 법을 ‘빠삭하게’ 아는 소수만 누리고, 보호가 절실한 이들은 법의 사각지대로 밀려난다.
이는 결코 개인의 무지가 빚어낸 참사가 아니라 제도의 구조적 실패다. 재산을 물려받던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법이 빚을 물려받는 시대의 서민을 옥죄고 있다. 유족의 삶에 석 달짜리 시계를 들이대면서 시계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시스템은 당장 뜯어고쳐야 한다. 사망신고 때 금융재산과 채무를 한 번에 조회해 주는 ‘안심상속 서비스’는 안착했지만, 그 결과지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공백으로 남아 있다. 사망신고 창구에서 3개월의 기한과 세 갈래 선택지를 명확히 고지하고, 한정승인을 내어주는 법원이 청산 절차와 상속재산파산 제도를 결정문과 함께 일러주어야 마땅하다. 이는 잘 정돈된 종이 한 장이면 족한 일이다.
한 사람의 실패가 죽음과 함께 끝나지 못하고 자식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면, 실패를 용인하고 재기를 돕자는 우리 사회의 외침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빚을 물려받는 사회에서 빚의 굴레가 끊어지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안전한 이정표를 세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