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성형 AI, AI 에이전트, 피지컬 AI 등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다. 이에 조선산업도 AI 전환(AX)을 시도하고 있으며, 정부도 다양한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산업 AX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현장에 축적된 ‘암묵지’이다. 암묵지는 헝가리 출신 영국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가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경험과 직관을 통해 형성된 전문가의 지식을 의미한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일한 숙련자는 작업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나 이상 징후를 경험적으로 감지하고, 상황에 따라 작업 방법을 유연하게 조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은 매뉴얼이나 도면만으로는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 결국 숙련자의 머릿속과 손끝에 축적된 채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조선산업은 수주에서 설계, 강재 절단, 가공 조립 탑재, 그리고 진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정이 복잡하게 연결되는 대표적인 숙련·경험 산업이다. 각 공정의 품질과 생산성은 설비뿐만 아니라 현장 작업자의 경험과 숙련도에 크게 좌우된다. 즉, 조선산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용접 직종의 경우 같은 도면과 작업조건이라도 용접사의 숙련도에 따라 작업 결과와 품질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조선산업의 AX는 암묵지를 어떻게 데이터로 전환할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고숙련 용접사의 작업 영상과 용접 조건, 작업 자세, 속도 등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AI로 분석한다면 숙련자의 판단과 노하우를 디지털 지식으로 축적할 수 있다. 나아가 이를 산업용 로봇의 작업조건에 반영, 사람의 경험을 자동화 설비로 이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이 조선산업에 필요한 ‘암묵지 AI’다.
암묵지 AI의 필요성은 인력구조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현재 우리나라 조선산업 현장의 고숙련 기능 인력은 고령화되고 있고, 젊은 생산 인력의 유입은 충분하지 않아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이 단절될 우려도 있다. 숙련자의 기술을 AI를 통해 기록하고 활용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뿐만 아니라 기술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 베테랑과 AI에 익숙한 젊은 인재가 한 팀을 이루는 방식이 필요하다. 베테랑은 경험에서 얻은 판단 기준과 작업 노하우를 제공하고, 젊은 인재는 이를 데이터로 수집하고 구조화해 AI 기술로 구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와 AI 모델은 특정 개인의 경험을 넘어 조선산업의 중요한 기술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조선산업의 AX를 조선소 자체의 노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정부가 공정별 고숙련 기술의 데이터화부터 AI 모델 개발, 현장 실증, 로봇·자동화 설비와의 연계까지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대형 조선소들은 자체적인 기술력과 투자 역량을 바탕으로 AX를 준비하고 있지만, 영세한 중소조선소의 여건은 크게 다르다. 중소조선소에도 오랜 현장 경험과 숙련을 가진 기술자들이 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데이터화하고 AI로 구현할 전문 인력과 투자 여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 암묵지를 AI로 전환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정부는 중소조선소가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선 암묵지 AI 공동센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고숙련 작업자와 AI에 능숙한 청년 인력을 한 팀으로 구성해 용접·취부·도장·의장 등 핵심 공정에 축적된 숙련 기술을 체계적으로 데이터화하고, 이를 AI 기술로 구현하는 것이다. 나아가 대형 조선소와 중소조선소, 기자재업체, AI 전문기업, 대학 등이 함께 참여하는 대·중·소 상생형 조선산업 AX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미래 경쟁력은 단순히 AI만을 얼마나 많이 도입하느냐보다, 현장에 축적된 숙련 기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AI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암묵지 AI를 통해 사람의 경험을 산업의 데이터 자산으로 전환한다면, 우리 조선산업이 값싼 노동력과의 경쟁에서 벗어나 기술력과 생산성의 우위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